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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n 28. 2024

영화 <괴물>

모두가 괴물인 세계와 그 바깥



  괴ː물 (怪物)

   【명사】

  ① 괴상하게 생긴 물체.

   ┈┈• ∼이 나오는 영화.

  ② 괴상한 사람.

   ┈┈• 그는 학급에서 ∼로 통한다.    




 영화 <괴물>(2023)은 한국에서는 <브로커>(2022)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전면에 내세워졌다. 하지만 실상 이 영화는 감독보다는 극작가인 사카모토 유지(坂元 裕二)의 지분이 더 큰 작품이다. 이 점을 반영하듯 경쟁작으로 초청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 영화계가 국제 무대에서 제대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말 모든 걸 쏟아 넣기로 작정했구나. 일본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에, 국제무대에서 한창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인 감독,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 그리고 심지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안도 사쿠라, 다나카 유코, 에이타 등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먼저 영화의 표면부터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괴(怪)’는 기이하다, 의심스럽다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이자 단어이다. 그런데 사전은 이 글자/단어에 그밖에도 ‘정상(正常)이 아닌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표제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정상과 비(非)-정상 사이를 가르는 경계에 대한 영화적 이미지와 서사를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또 듣게 하려는 욕망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플롯. 영화 <괴물>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느슨한 옴니버스 구조로 되어 있다. 거의 동일한 시간선을 공유하는 세 개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배치되며, 첫째로 엄마인 ‘무기노 사오리(안도 사쿠라 분)’의 관점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아들의 문제로 찾아간 학교에서 만나는 ‘비인간적 괴물’을 보여주고, 둘째로 학교 교사인 ‘호리 선생(에이타 분)’의 관점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괴물들’을 보여주고, 그리고 앞의 두 이야기에서는 오브제로 배치되어 있던 ‘무기노 미나토(쿠로카와 소야 분)’의 시점(관점)에서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모두가 괴물인 세계’라는 진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세 개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영화의 플롯은, ‘진실(Aletheia)’이라는 중심서사에 대한 단편적 에피소드의 반복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진실의 내러티브가, (인물들의 체험과 행위와 영화-내-이데올로기로 직조되는) 내부 세계(Diegesis)에서는 타자에 대하여 은폐된 상태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언급, ‘괴(怪)’는 ‘정상이 아닌 것’도 의미하는 글자이자 단어라는 곳으로 돌아가 보자. 싱글맘인 사오리나 호리 선생이나, 그리고 사오리의 아들이자 호리 선생의 학생인 미나토나 요리나, 심지어 학교의 교장 선생님(다나카 유코 분)이나 하나같이 모두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애초에 ‘평범하다’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만약 ‘평범하다’는 것이 모두(みんな)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그 ‘모두’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이것은 극작가인 사카모토 유지가 TV 드라마 <마더>(2010) 이후로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건 영화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일종의 매체로서의 특징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독자 또는 관객이 스크린 너머로 시선을 침투시키는 동안 영화가 발산하는 빛도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스며든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우리가 어디 가서 “일본영화 <괴물>을 봤다.”고 말하는 것은, 영화가 당신을 ‘모두가 괴물인 세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의 목격자’로 지목했음을 함께 의미한다는 것이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진실은 영화 내부 차원에서는 정말이지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다. ‘엄마 사오리’도 ‘호시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도 모두가 진실을 모른다. 왜냐하면 ‘미나토’와 ‘요리’ 두 소년의 성격과 욕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 명의 소년들 역시 그들을 둘러싼 세계의 진상, 즉 ‘모두가 괴물’이라는 진실을 모른다. 그래서 그 둘은 폭풍이 그치고 난 풀밭을 달린다. 평소에는 항상 폐쇄되어 있지만 폭풍 때문인지 열려버린 철문을 가로지른다. 그래서 평소에는 가로막혀있는(가로막혀있어야만 하는) 철교로 함께 달리고 또 달린다. 마치 그 너머에는 어떤 자유나 해방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철부지 두 소년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영화 내부 세계에서 ‘바깥’이라고 해봤자,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현실 세계 바깥의 이미지로서 영화를 응시하듯, 기껏해야 우리가 존재하는 지금 여기라는 현실 세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어쩌면 영화 <괴물>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괴물인 세계 너머의 거기는 어떤 세계입니까?



이미지 출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124020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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