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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ug 26. 2024

영화 <愛なのに(사랑인데)>

사랑을 탐구(探究)하는 본격 로맨스필름 (한국어 제목 : 사랑본섹)

        

 ‘로맨스 영화(Romance film)’는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하는 영화 장르를 말한다. 보통 우리가 로맨틱코메디(로코), 러브코메디, 한국식 멜로드라마 등으로 분류하는 영화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영화들은 그 기저에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아주아주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심오하면서도 흔해 빠진 철학적 질문이 놓여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인간의 근원에 관한 철학적 탐구와 고찰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영화를 근대 예술의 한 갈래로 당당하게 인정받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로맨스 영화 중에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 그 자체를 집요하리만큼 파고드는 영화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영화들은 아무리 가볍거나 세속적인 영화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진지하게 주제를 대하고 또 다루고 있는 영화로 간주해야만 한다. 조조 히데오 감독, 이마이즈미 리키야 각본의 일본 영화 <愛なのに(사랑인데)>(2021)가 바로 그러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자 먼저 영화부터 살펴 보자. <愛なのに(사랑인데)>의 설정은 이렇다. 고교생 ‘야노 마사키(카와이 유미 분)’는 헌책방에 앉아 하루 종일 책만 읽고 있는 주인장 ‘타다 코지(세토 코지 분)’에게 반해 어느 날 고백과 함께 청혼한다. 그런데 마사키에게는 몇 번이고 고백했다가 차이기를 반복하는 학교 친구 ‘마사오(죠타로 분)’가 있다. 또 코지는 사랑을 고백했지만 자기를 차버리고 ‘료스케(나카지마 아유무 분)’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잇카(사토 호나미 분)’라는 여성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료스케는 웨딩플래너인 ‘미키(코우리 유카 분)’와 바람을 피우는 중이다.     


 이렇게 얽히고설키는 와중에 눈길을 끈 것은, 마사오가 마사키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 과정을 응시하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카메라는 공간적으로 좁게 뻗은 길을 사이에 두고 카메라가 먼 곳의 두 인물을 천천히 흔들리는 시점으로 엿보듯 관찰하고, 관객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백(말 걸기)과 거절(대답)에 대한 포커싱을 관음증적으로 응시하도록 강제당한다. 보통은 여기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고백을 단호하게 거절한 마사키가 뒤돌아 카메라 쪽으로 걸어오다가 이윽고 카메라(시선의 주체)를 지나쳐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마사오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땅에 내던지며 괴로워하다가, 무려 땅에 흩어진 꽃을 주워서는 철조망 울타리 옆에 한 송이씩 꽂아주고는 심지어 떨어져 있던 포장용 신문지까지 챙겨든다. 그리고 카메라는 야노가 아니라 온전히 거절당한 마사오의 모습에만 초점을 유지한다.     


 마사오는 우리에게 차례대로 첫사랑의 실패를 통해 ‘고백-좌절-분노-수용’의 정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10대를 지나고 있는 소년의 서툴지만 뜨거운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이 영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 그 자체에 놀랍도록 깊이 빠져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잇카(사토 호나미 분)는 결혼을 앞둔 연인과의 섹스보다 예전 자신에게 고백했지만 차버린 남자(세토 코지 분)와의 섹스에 더욱 마음이 간다. 하지만 잇카에게도 코지에게도 결국 황홀한 섹스는 사랑이 아니었다. 료스케는 미키의 매력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눈길을 떼지 못하는 매력을 느끼는 것도 사랑이 아니었다. 결국 잇카는 료스케와의 결혼을 진행하기로 하지만, 이를 통해 영화는 결혼도 사랑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요컨대 영화는 ‘사랑’이란, 첫사랑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도 아니고 결혼도 아니며 또 섹스와도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사랑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코지와 마사키가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통해 어느샌가 사랑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여전히 사랑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그래서 마치 신비 내지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영화를 보고 또 봐도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의할 수는 없고, 다만 ‘사랑은 분명 존재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될 뿐이다.  





        

제목의 문제     

 이 영화는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원제를 살려서 <Ai nanoni(Love Nonetheless)> 등의 제목이 붙었다. 그러니까 일본어 원제(<愛なのに>)든 방금 말한 외국어 제목이든 번역하자면 ‘사랑임에도’나 ‘사랑인데(도)’ 정도의 뜻이 된다.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을 제목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어로 번역한 제목은 <사랑본섹>이다. 이딴 제목을 생각해낸 언어감각도 끔찍하게 형편없지만, 실제로 그 제목을 그대로 붙여서 국내에 유통할 생각을 하고 실행까지 한 건 정말이지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번역자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고, 짐작해보건대 마케팅 담당자나 국내유통사의 임원이나 대표 같은 비전문가가 밀어붙인 제목이 아니었을까 한다. 만약 정말 그런 이유라면, 비(非)전문가가 전문가의 작업에 손을 대면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가를 새삼 확인하는 셈이다. 어쨌든 결국 유독 한국에서만 이상한 제목을 붙여낸 셈이라서 도저히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다.




영화평론가 고래(Go來)의 Pick!


<상상적 마사오 관점>


세 번째 고백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이지 1초만에 거절당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준비한 붉은 꽃다발을 바닥에 던졌다. 도대체 왜 나는 안 되는 건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세계 전체로부터 거부당하는 것 같은 괴로움에 온몸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때였다, 바닥에 산산이 흩어진 붉은 꽃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마사키는 이미 떠나고 여기에 없다. 오로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나와, 그리고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꽃들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꽃을 주웠다. 그리고 철조망 옆 흙바닥에 한 송이씩 꽃을 심으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괴로운 건 나 하나로 충분한데. 정말이지 미안해.






이미지 출처 : https://www.hulu.jp/love-noneth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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