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남미
#1. 소소한 이야기 - 미니양
2006년, 여행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떠났던 인도에서 여행이란 것에 매력을 느꼈었다. 그 뒤로 한시도 가만히 머무르지 못하고, 배낭을 꾸리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여행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남미로의 여행은 막연히 꿈만 꿨었다. 언젠간 가봐야지, 하지만 막상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항간에 떠도는 수많은 남미의 치안 이야기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큰 원인은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는 지리적 이유 때문이었다.
문득 여행자에게 있어서 남미라는 대륙은 어쩌면 꿈의 대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도와 더불어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 나 역시 남미는 남은 숙제 같은 그런 여행지였던 것이다.
그러다 에콰도르에서 봉사단원으로 있던 친구를 만나겠다는 핑계로 남미로의 여행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항상 마음 속에만 가지고 있던 그 마음을 드디어 꺼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느꼈던 설레임은 어떤 나라를 여행했을 때 보다도 컸다.
여행 준비랄 것도 없이 이번에도 가이드북 하나 들고 떠나던 날, 익숙하지만 낯선 기분이 들었다. 다시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는, 꼬박 하루를 날아 도착한 시카고에서부터 이번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카고는 큰 도시였기에 서울을 다니는 기분으로 도심을 휘젓고 다녔다. 일주일 동안의 휴식을 통해 여행 워밍업을 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남미로의 이동.
남미에서의 여행은 몇 가지 기억들이 큰 줄기를 이룬다.
첫 날 밤 리마공항에서의 노숙. 남미의 치안을 생각하며, 혼자 짐을 들고 긴장한 아이가 리마공항에서 아침 태양을 기다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곧 이야기 하게 될 밀라노 가방도난 사건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쿠스코의 고산병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멍~함을 만나게 해 주었다. 한국에 살면서 언제 3000m 가까이 되는 곳을 가볼 일이 생기겠는가. 다행히도 고산병이 심하진 않았기에 그저 꼬까잎을 씹으며 비교적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찾은 마추픽추. 정말 엽서에서나 봤던 그 곳에 서니 아이맥스 영화관에 들어와있는 기분이랄까?
마추픽추를 뒤로 하고, 라파스로 가기위해 페루 국경을 지나는데, 페루 경찰관에게 짐검사를 한답시고 돈을 도난 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2명이서 1명은 말을 걸고, 1명은 돈을 가져가는 수법. 이미 밀라노에서 한 번 당했기에 두 번은 당하지 않았다. 근데!! 너네들 경찰이잖아!! 분노를 삭히며, 볼리비아 땅으로 넘어갔다.
열악한 볼리비아 버스에 몸을 구겨넣어, 버스를 통해 우유니로 가는 길. 창 밖으로 보이던 수많은 별들, 정말 쏟아질 것처럼 버스 머리 위로 내려앉은 별들은 잊기 힘들 것 같다.
오랜 이동 후 드디어 도착한 우유니. 투어회사와 투어가이드를 잘 만나야 한다던 여행자들의 말에 조금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너무 좋았던 투어회사의 까밀로와 가이드였던 일라리오. 그들 덕분에 눈이 시리도록 하얀 우유니의 기억이 더 멋지게 남을 수 있었다.
살타에서의 망중한 후 24시간의 이동. 그리고 만난 엄청난 이과수 폭포. 모기와의 사투 끝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잠시 여행을 쉬어가기로 했다. 하루 만에 우루과이에 다녀오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같은 나라에서 비행기로 4시간 이동을 해야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며, 경이로운 모레노 빙하를 만났다. 차마 발길을 뗄 수 없을만큼 멋있었던 그 빙하의 모습은 아주아주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여행은 토레스 델 파이네 가는 길에 여행사의 실수로 살짝 엉켜버렸다. 하마터면 볼 수 없을 뻔 했던 토레스 델 파이네는 지금도 사진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절경이다.
파타고니아와의 짧은 만남 이후, 남미를 거슬러 올라 쿠바와 만났다. 빠르게만 달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었던 나에게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쿠바를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눈물 글썽였다. 좋았던 기억을 가득 안고, 언젠가 꼭 다시 쿠바에 찾아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해산물과 체리의 천국이었던 마지막 도시 칠레 산티아고. 남미에서의 45일이 한 편의 뮤지컬처럼 지나갔다. 다른 여행지로 이동하는 것처럼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루 하고도 12시간을 지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와 2년이 지난 지금, 언제 내가 남미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금방 나의 일상에 적응해버렸다. 하지만 남미가, 여행을 하던 그 때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역시 난 남미에 다녀오긴 왔나보다. 가기 전에 가졌던 수많은 남미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선입견들이 여행 후에는 많이 달라졌다. 이번 여행에서도 난 몸소 부딪치며 느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일상을 살고, 세상 어디를 가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고, 세상 어디를 가나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남미 여행 후 이제 또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지만, 어떤 여행지보다도 매력적이었던 남미를 쉽게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2.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 고래군
여행이 자기 삶에서 가장 큰 조각인 미니양은 아마 앞으로도 나를 남겨두고 어딘가로 떠났다가 되돌아올 것이다. 그녀의 이번 여행이 내게 알려준 것은 내 스스로도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알게 한 계기였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가보고는 싶다. 내가 낮을 살고 있을 때 밤을 통과하는 사람들, 내가 여름을 준비할 때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
참 작은 나라 한국. 큰 사건이나 부조리에도 제대로 분노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이 나라에서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온전히 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녀가 다음 여행을 또 준비하는 이유도 그러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