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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여기에서 쉬었다 가요

2013. 칠레 ::: 산티아고

by 미니고래


#1. 이제 곧 꿈에서 깰 시간 - 미니양


쿠바를 떠나 파나마를 들러 밤을 날아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산티아고는 남미여행 45일 중 나의 마지막 도시이다. 이제 곧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고래군이 생각나긴 하지만 사실, 지지리도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싫다. 한국이라기보단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 싫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이제 나를 버리고 사람들과 잘 섞이도록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해온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어떻게 된 게 하면 할수록 더 힘이 드는 건지. 아마도 사회생활이 이런 거다 라는 것들을 조금씩 더 알아가기 때문이려나?

며칠 남지 않은 나의 여행, 이제 슬슬 현실을 생각해야할 때이다. 너무나도 아쉽지만 후회없도록 이 곳에서의 마지막 4일,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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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음 한 구석이 찡 - 미니양


산티아고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이끌었던 한 가지는 필레의 유명한 시인인 네루다도 아닌, 바로 아옌데 대통령이었다.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대통령에 대한 일화를 우연히 읽게 된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어딘가 모르게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정치라는 것, 권력이라는 것, 나라를 바꾼다는 것. 전부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렵고, 무지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피하지 않고, 관심을 가져보려 노력할 뿐이다. 내가 사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조금 더 진실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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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쉬었다 가요 - 미니양


산티아고는 대도시라 그런 것인지 딱히 할 게 없다. 그저 걷고, 해산물과 과일을 먹는 것 밖에는.


오늘도 난 체리 한 봉지를 손에 들고 걷는다. 1kg는 너무 무거우니까 500g만 사서 하루종일 걸으면서 야금야금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도 비싼 체리가 여기에서는 까만 비닐봉지를 가득 채워도 천 원 남짓이니까 실컷 먹고 갈 요량이다.


터벅터벅 발길 닿는대로 걷다 힘들어져서 공원 벤치에 누워본다. 따가운 남미 햇살을 피해 누운 나무 그늘 아래 벤치는 참 편안하다. 지나가는 현지인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지만 뭐 어때? 한참을 누워 멍하니 하늘도 바라보고, 음악도 들어본다. 고요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며, 기분 좋음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평온한 기분 느껴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돌아가면 쫓기는 마음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며, 잠시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쉬고, 공원을 나서 남은 돈으로 쇼핑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지 못했다. 그냥 여기에서는 지금처럼 쉬었다가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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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제 곧 온대요 - 고래군


그러고 보니 '그녀가 없을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잔뜩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막상 그런 건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아니 딱히 그런 게 없었다는 게 옳을 것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한국은, 더운 여름을 여행하고 있는 그녀에게 더욱 쌀쌀맞게 대할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한국은 삭막하기 그지없으니까. 나라도 따뜻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줘야겠지.

날 두고 혼자 행복한 여행을 했을 그녀에 대한 처절하고 소심한 복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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