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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멋있는 하코다테 #1

2012. 일본 ::: 하코다테

by 미니고래


#1. 바람 잘 날 없겠네- 고래군


공간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시각적인 정보와 함께 다른 감각 정보를 묶어 기억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그 기억을 저장하고 출력해낼 수 있다. 오타루 운하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때 맡았던 바닷가의 비릿하고 짠 내음을 함께 기억한다거나, 아니면 하코다테의 푸른 하늘 아래 놓인 하얀 풍경들을 볼 때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시린 바람의 차가움을 함께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코다테는 메이지 시대 일본이 최초로 개항한 항구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래된 건물들에 일본의 색이 옅게 나타나는 것도 하코다테의 특징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케이블카가 오르내린다는 하코다테 산을 걸어 올라가다 만났던 풍경이 꽤나 ‘동양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비非-동양적’이었던 풍경은 역시 하리스토스 정교회 성당과 성 요한 교회였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눈 사이로 솟은 하얀 교회 건물이라니. (뭐, 한국의 수십 억짜리 거대 교회 건물보다는 차라리 오리지날리티가 느껴지지만…)


“약간은 그리스 같은 느낌이 나요. 뭐 눈이 있는 겨울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파란 하늘 아래 하얀 건물들이 늘어서있는 바닷가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이 있어.”


풍경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윽고 그리스 여행에 대한 추억을 두어 조각 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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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맛으로 멋있는 동네- 고래군


차가운 거리를 걷다 보니, 지치고 허기까지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이 징글맞은 추위를 견디려면, 아무래도 뭔가를 뱃속에 채워 넣어줘야 한단 말이지. 나는 그녀에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난 배고프면 다소 사나워지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나 배고파!”

“많이 배고파요?”

“배고파서 더 추운 것 같아.”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 먹을까요?”

“음…(어쩐지 그건 좀 돈이 아까운데…) 아니에요. 이따가 밥 먹지 뭐. 아직은 괜찮아요.”


내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녀, 아직까지는 내가 덜 포악하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먹을 것을 안 주고 다시 앞서 걸어가는 것을 보니.


“나 배고파!”

“조금만 참아! 그러게 아까 편의점에서 먹을 거 사준다니까, 왜 싫다 그랬어!”

“아까는 참을 만 했는데, 허기 때문에 더 추운 것 같아.”

“어떡해? 그럼 다시 되돌아가서 뭐 좀 먹을래요?”

“음… (다시 되돌아가는 건 좀 귀찮은데…) 아니에요. 이따가 밥 먹지 뭐. 아직은 괜찮아요.”


그녀의 의심 담긴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어쩐지 한 번만 더 투정 부렸다가는 혼을 낼 분위기. 그나저나 배고픔과 추위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그런데 있잖아요… 우리 밥 뭐 먹을 건데? 언제 먹을 거야?”

“이따가 삼색동 먹기로 했잖아. 아까 이야기했던 건데 기억 안 나요?”

“아니, 기억나는데… 언제 먹는 건데?”

“지금 가는 길이잖아. 그럼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녀가 화났다.


“아니, 그러게. 나 배고프고 추워서 잠깐 멍했나봐.”

“그러게 아까 편의점에서 간단히 뭐라도 먹자니까, 왜 싫다 그랬어?”

“아니 나는 편의점에서 사먹으면 이따가 밥 못 먹을까봐…”

“에휴, 하여튼 말은 지지리도 안 들어.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잠시만 더 참아요. 많이 배고파? 도저히 못 참겠어?”

“아니야, 괜찮아요…”


결국 혼났다.





#3. 오호. 삼색동이라 - 미니양


평소에는 온화한 편인 고래군이 날카롭게 변하거나, 멍한 상태일 때가 있다.

그 때는 바로 배가 고플 때이다. 이럴 때면 고래군은 철저하게 본능적인 아주 단순한 사람이다. 요즘은 국내, 해외 가릴 것 없이 어느 관광지에 가면 뭘 먹어야 한다, 어디가 맛있다더라, 등 먹거리 정보가 넘쳐난다. 하코다테에도 유명한 몇 가지 음식들과 맛집들이 있었다. 워낙 찾아다니며 먹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정보들을 봐도 그냥 무심코 보고 지나쳤다.


하지만 하코다테에서는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삼색동!

해산물을 워낙에 좋아하는 미니고래는 삼색동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코다테 시장에서 한 번 먹어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던 터였다.

(물론 그 사이 배고파 멍 때린 고래군은 한 소리를 들어야했지만...)


시장에는 삼색동을 먹을 수 있는 가게들이 아주 많았다. 워낙 유명한 음식이니까.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 다양한 종류의 삼색동 중에 마음에 드는 음식을 주문했다. 세 가지 해산물을 덮밥으로 먹는다는 의미의 삼색동.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은 음식이름이겠지만, 단순해서 기억하기는 쉬웠다.


배고픔에 고래군이 난폭해지려는 찰나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고래군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 역시 식욕이 폭발할만한 비주얼을 보고 말았다.


싱싱한 해산물이 1가지도 아니고, 3가지나 올려져 있다니... 아름다운 삼색동의 자태에 웃음이 슬며시 번졌다. 먹으면서도 연신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 삼색동은 조리가 필요없이 싱싱한 해산물이면 좋은 간단한 음식이었다. 재료가 좋으면 음식 맛이 좋다고 했던 그 말이 제대로 들어맞는 순간.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겐 두 번 먹을 수 없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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