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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Dec 16. 2015

맛으로 멋있는 하코다테 #2

2013. 일본 ::: 하코다테



#1. 아버지와 아들- 고래군 


 북방의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을 헤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트램 레일을 가로지르며 길을 건넌 다음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앞을 지나쳐,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사거리 모퉁이에 작은 타코야끼 가게가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다. 어젯밤 어둠을 헤치고 숙소를 찾아갈 때만 해도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있을 시간이어서, 타코야끼 가게가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게에서 흩뿌리는 따뜻한 냄새에, 나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붙잡고 멈춰 섰다. 물끄러미 가게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따라간 그녀가 내게 물었다.


“오빠 왜요? 냄새 좋다! 우리 저거 먹어볼까?”

“응. 저거 안 먹으면, 나 반드시 후회할 것만 같아.”


그녀의 눈이 둥그렇게 미소 짓는다. 마치 ‘네 기분 다 이해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스미마셍.”

“이랏샤이마세.”

“타코야끼 오네가이시마스.”


 가게 주인아저씨가 묵직한 저음으로 건넨 인사말이 작은 가게를 한 바퀴 울려 우리에게 도착했다. 주문을 하자, 아저씨는 같이 일하던 어린 청년에게 이것저것 손짓하며 일을 시킨다. 그런데 대답하는 청년의 목소리가 이제 갓 변성기에 접어든 목소리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자지간이다. 아무리 봐도 아버지와 아들로밖에 볼 수 없을 만큼 그 둘은 서로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틀 위에 반죽을 붓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그것을 곁에서 지켜본다. 반죽을 다 붓자, 아버지가 반죽통을 받아들고 틀 위에 여기저기 더 부으며 가르친다. 아마도 좀 더 고르게 부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이겠지. 여기는 지금 수업중인 것이구나.

타코야끼가 다 익자 아들이 뚜껑 달린 네모난 종이그릇에 그것들을 담으며 우리에게 뭐라 묻는다. 어어, 잘 못 알아듣겠다.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런 내 표정을 본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하이. 아아 소스 둘 다 넣어도 괜찮냐는 거 같아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아들이 간장 소스와 마요네즈 소스를 타코야끼 위에 그물처럼 수놓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뒤에 묵묵히 선 채로,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남성’의 과묵함이 분명 사회적으로 학습된 이데올로기 내지는 일반의지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게 반드시 틀리거나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 다들 그렇잖아. 내 스스로의 주체가 의지를 가지고 결정한 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주입받은 대로 움직인 결과라고 하면, 우선 부정적인 뉘앙스로 아주 진하게 채색되어버리는 거 말이야. 그런데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에는 엄격함보다는 염려와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걸 보니, 부정(父情)의 과묵함이 이데올로기라고 해서 우선 부정(否定)할 것까지는 없겠구나 싶었다.







#2. 삐에로 버거- 미니양 


 우리가 하코다테에 도착한 날이 12월 31일. 옆으로 흐르는 눈(?)을 목격했던 그 날이 한 해의 마지막 밤이었던 것이다. 무사히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1월 1일 새해. 한국에 있었다면 새로운 한 해의 기분이 들었겠지만, 타국에서 맞이한 새해는 그저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버린 잔인한 하루였다. 무언가 먹어야 했기에 1월 1일에도 문을 연 식당이 어디에 있을까 찾아보던 차에 햄버거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새해 첫 날에 햄버거라니. 뭔가 어울리진 않았지만,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하코다테에는 맥도날드보다 인기가 많은 햄버거 집이 있단다. 그것도 하코다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철저히 로컬 브랜드, 삐에로 버거. 

새해 첫 날임에도 삐에로 버거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덕분에 고픈 배를 움켜쥐고 꽤나 오랜 시간 음식을 기다려야했다. 배가 고프면 날카로워지는 우리의 고래군. 역시나 슬금슬금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고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래군의 떼(?)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오빠! 햄버거 어때요?”

“(우물우물) 맛있어!”

“다행이다. 나도 맛있어!”

“근데 음료는 우롱차 말고 콜라였으면 좋았을 것 같아.”

“왜? 난 우롱차가 더 좋은데.....”


 삐에로 버거의 세트에는 음료가 콜라 대신 우롱차가 곁들여 있었고, 감자튀김에는 진한 치즈가 올려져 있었다. 콜라를 별로 좋아하진 나에겐 우롱차는 아주 좋았지만, 콜라를 좋아하는 고래군에게는 별로였나 보다. 하지만 버거가 맛있으니,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전투적으로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오는 길에 고래군이 한 마디 한다.


“우리 이거 갈 때 사가지고 가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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