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퍼피앙>, <찌라옌타포(어묵국수)>
카오산에서는 카드보다는 현금을 사용할 일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내가 길거리 음식을 많이 사먹으니 그랬던 것이긴 하다. 카오산에 도착했으니 식사를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비상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환전을 해야만 했다. 잠도 자고 싶지만 일단 배부터 좀 채워야만 했다. 짐을 대충 풀고 환전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환전소를 찾아가서 환전할 때쯤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보통 이맘 때면 우기가 끝났기 마련인데, 기후변화 때문인지 올해는 아직 우기가 덜 끝난 모양이다. 급격하게 흐려지는 날씨에 후다닥 환전을 하고 대충 먹을 걸 사들고 숙소로 얼른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비가 정말이지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센 빗줄기에 도로에는 금세 물이 차올랐고, 작은 개울이 되어버렸다. 이대로는 숙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가게 앞 차양 같은 곳에 멈춰서서 잠시 기다려봤지만, 아무래도 지나가는 소나기는 아닌 듯하다. 이렇게 길 한가운데에서 발이 묶여버리나 싶었다. 길에 차오른 물은 점점 더 깊어져서 이제는 거의 발목까지 잠기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맘 편히 뭐라도 먹자 하는 마음으로 근처에 있는 바 겸 식당으로 그냥 뛰어 들어갔다.
들어선 곳은 람부뜨리 거리에 있는 <퍼피앙(Popiang)>이라는 곳이었다. 예전부터 길을 오가며 보던 곳이었지만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배도 고프고 꽤나 피곤하기도 해서 쉬어가면 좋을 타이밍이기도 했다. 우리는 맥주(100바트) 두 병과 새우크로켓(150바트)을 주문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도시를 물들이는 풍경을 보며 맥주 한 모금, 크로켓 한 입을 했다. 지나가는 자동차는 바퀴가 반쯤 물에 잠긴 채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문득 비내리는 소리를 이렇게 가만히 들어본 게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정말 갑자기 많이 내리는 바람에 무작정 들어온 곳이었지만, 이렇게 비오는 카오산의 풍경을 보며 멍때릴 수 있는 시간이 문득 좋았다.
이곳에는 우리처럼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들어온 손님들이 꽤 있었는데, 가만 보니 다들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자 비가 조금은 잦아들었나 싶을 때쯤 계산을 하고(카드결제는 10% 추가금액이 붙음) 길거리로 나왔다. 조금 잦아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폭우에 가까운 편이었고 길거리는 여전히 정강이까지 다 젖을만큼 물이 불어난 채였다. 슬리퍼가 빗물 속에서 자꾸 벗겨지길래, 아예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김에 숙소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밥까지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카오산에서 유명한 어묵국수 집인 <찌라옌타포>가 보여서 후다닥 들어갔다. 국수 두 개(작은 사이즈 60바트, 큰 사이즈 70바트)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손님이라곤 우리 밖에 없다. 평소였다면 손님들로 가득했겠지만 비가 이렇게나 많이 오는 날에는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겠지. 금방 주문한 어묵국수가 나오고, 따뜻한 국물과 함께 면발을 후루룩 먹었더니 비에 젖어 차가워진 몸이 따뜻하게 녹기 시작했다. 국수를 다 먹어갈 때쯤 가게 안이 분주해지더니, 우리에게 한 명이 와서는 추가로 주문할 게 있냐고 물었다. 추가로 주문할 것 없다고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니 직원들이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니 오늘 장사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묵국수는 유명세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은 그냥 무난한 맛이었다. 기대가 너무 높았던 건지 마감을 해야해서 그랬던 건지, 여기보단 길 건너 원래 가던 어묵국수 식당이 내 입맛에는 더 맞았다. 그래도 비가 이렇게나 추적추적 오는 날, 환전도 무사히 할 수 있었고, 따뜻한 국수 한 그릇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 퍼피앙(Popiang)
43 Ram Buttri Aly, Chana Songkhram, Phra Nakhon, Bangkok 10200 태국
- 찌라옌타포(어묵국수)
Chakrabongse Rd, Talat Yot, Phra Nakhon, Bangkok 10200 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