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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Feb 03. 2016

이제부터 긴 여행의 시작

2012. 라오스

#1. 출발 직전-미니고래


“비행기 탈 때 신발 벗어서 들고 타는 거야.”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표정은 무엇인가를 닮았다. 평소보다 더 반짝이는 눈빛과 약간 다물어 올린 입술.


“에이, 뭐야 그게. 제주도 갈 때 이미 비행기 타 봤네요.”

“진짜야. 국외선 탈 때는 신발 벗어서 손에 들고 타는 거야.”

 그리고 유심히 그를 관찰하는 시선은 강아지가 다람쥐로 변하는 모습처럼 생기가 흘러넘쳐 그녀의 주변을 촉촉하게 만든다. 그럴 때는 분명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타는 거지만 티비에서 많이 봤어. 안 속아.”

“뭐야. 지금 내 말 못 믿는 거야? 그렇구나.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구나.”

 첫 해외여행을 앞둔 그는 그녀의 이런 장난이 만들어주는 미소 덕분에 긴장이나 걱정은 거의 사라진 표정이다. 인천국제공항의 게이트 앞 대기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비행기들이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제 곧 시작이라고.








#2. 출발 직전-고래군


 진에어(Jin Air)에서 새롭게 라오스 비엔티엔 라인을 신설하면서 마련한 이벤트 덕분에 질러버린 우리의 여행. 몇 년 전 발급해놓고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아왔던 여권에 첫 스탬프가 찍히기 직전이다. 


“난 출국 심사 따로 받아야 하니까 오빠는 여기 줄 서서 심사 받아.”

“당신은 어디 가는데?” 

“나는 자동여권심사 받으러. 그냥 이따가 여권이랑 티켓 주면 될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지는 그녀. 하지만 심사를 어떻게 받는 건지 모른단 말이야 나는. 이렇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앞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내 앞의 앞 차례의 남성은 여권과 티켓을 내밀고는 가만히 서있다. 그리고 심사대의 아저씨는 무엇인가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사람을 관찰하고는 모니터를 본 다음 다시 그 사람을 관찰한다. 그리고 나서 여권과 티켓을 돌려주자, 심사받은 사람은 내려놓았던 캐리어를 끌고 심사대 저편으로 나간다. 그리고 나서 내 앞에 서있던 세 가족, 아이 둘과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 아이들의 어머니는 여권뭉치를 내밀었다. 사람이 많으니까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옆의 심사대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앞 차례가 금방 끝나버렸다. 갑자기 긴장으로 가슴 한 가운데가 꽉 조여지는 느낌이다.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면서 나름대로 익숙한 척 하며 비행기티켓을 여권에 끼워서 출국심사대 위에 올려놓았다. 아까 앞의 앞 사람은 왜 그렇게 관찰당했던 것일까? 혹시라도 출국에 문제가 있다면서 통과 못 하면 어떻게 하지? 비행기 티켓 환불은 가능한 걸까? 머릿속으로 걱정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심사대의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는 티켓과 함께 나에게 내민다. 다 된 것인가? 나는 가도 되는 것인가? 가볍게 목례하면서 그것을 받아들고 심사대 저편으로 걸어나오려 몸을 돌리니 나를 구경하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자 가자!”






#3. 출발 직전-미니양


 나는 처음 해외로 나가는 고래군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시덥지 않은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그를 무심하게 대하며 최대한 방치해두었다. 

 ‘출국 수속 따위 별 거 아니니까 당신은 잘할 수 있을거야.’ 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출국심사를 받고 나오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게이트로 향했다. 처음으로 둘이 함께 떠나는 낯선 곳으로의 발걸음. 내게는 꽤나 익숙한 인천공항이고, 비행기였지만 혼자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라오스의 밤하늘과 풍경들. 과연 그도 좋아해줄까? 만약 싫어하면,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나는 그와의 손을 꼭 잡은 채 비엔티엔 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 이제 출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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