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주체의, 침묵을 강요당하는 언어
연극 <블루 초코 블루스>(윤광진 연출)가 대학로 ‘시어터쿰’에서 2026년 4월 3일부터 19일까지 상연 중이다. 작년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한 권영준의 극작품이다.
연극 <블루 초코 블루스>의 핵심적인 부분은 상연이 시작된 직후이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는 이러하다. 객석에서 볼 때 무대 좌우 가장자리에 세로로 놓인 두 개의 벤치, 그리고 무대 가운데에 비스듬하게 놓여있는 긴 나무(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시소). 무대 주변으로 둘러쳐진 반투명한 비닐 장막.
연극이 시작된 직후, 무대 뒤편을 가린 장막 너머에서 조명으로 비춰낸 사람의 그림자가 등장해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이는 실루엣의 목소리를 통해 “여기”와 “거기(또는 저기)”의 대립적 공간기호가 제시된다. 실루엣의 “거기는 괜찮아요?”라는 대사는 ‘여기는 괜찮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적으로 생성한다. 그리고 극 중 ‘괜찮지 않은 여기’만큼이나 객석의 ‘거기’도 그다지 괜찮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셋온음(tritone)’을 사용한 배경음악이 적극적으로 달라붙어 음습한 불안과 날카로운 불쾌감이 조성되어, 극장 내 ‘여기(무대)’와 ‘저기(객석)’이 매한가지로 괜찮지 않은 시공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빈 무대 한가운데에 오브제로 놓여있는 긴 나무막대기의 사선 구도가 불쾌한 불안을 지속시키게 된다. 공간을 비대칭적으로 분할하는 동시에 관객의 초점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통치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비스듬하게 놓여있는 긴 나무막대기는 <블루 초코 블루스>가 ‘불균형’과 ‘비대칭’, ‘경계’, ‘차별’, ‘폭력’, ‘불안’, ‘우울’에 관한 연극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체가 불명확한 비닐장막 뒤 신체(실루엣)의 스펙터클과 언어, 푸르스름한 조명, 그리고 배경음악의 셋온음이 자아내는 날카로운 불안의 정동, 그리고 사선으로 놓여있는 긴 나무막대기. 연극 <블루 초코 블루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약 5분 사이에 이미 거의 대부분 무대 위에 제시되는 것이다.
<블루 초코 블루스>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외된 주체의, 침묵을 강요당하는 언어’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 중 하나라는 점에서 연극 <블루 초코 블루스>는 분명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다만 이번 공연은 “코미디”라 하기에는 별로 안 웃기고, “광대극”이라 하기에는 지금의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 또는 풍자적 성격이 다소 빈약하다.
연극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김주연’(김종칠 분)이나 ‘고시중’(김현민, 최민혁 분), ‘수은’(김인아, 박승희 분)은 각각 전직 제비(현 노숙자), 사법고시에 실패한 만년고시생(현 노숙자), 가수를 꿈꾸는 술집 작부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테두리 바깥에 위치한 주체들, 타자화된 운터멘쉬(Untermensch)를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세 가지 캐릭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법고시는 2017년에 마지막으로 시행된 이후 폐지되었다. 카바레와 제비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은 주로 70~80년대였다. 따라서 오늘날의 무대에 나타나는 ‘김주연’과 ‘고시중’은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과거의 잔상과도 같다. 여기에 더하여, 자본가 남성에게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으로서의 ‘술집 작부’라는 ‘수은’의 캐릭터성도 이제는 꽤나 진부한 스테레오타입이 된 지 오래다. 이로 인하여 <블루 초코 블루스>가 보여주는 연극적 이미지는, 마치 어느 날 오랜만에 놀러 간 옛집 창고에서 발견한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나 DVD를 재생해서 보는 옛날 영화와도 같아지게 된다.
이것은 희곡 텍스트가 거의 20년 전에 쓰인 것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희곡은 90년대 중후반에서 00년대 초에 이르는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할 것이다. 그런데 공연에서는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별다른 지표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26년 4월에 상연되는 연극 무대에서는, (과거 시대임을 가리키는 연극적 지표, 이를테면 날짜가 인쇄된 신문지를 등장인물이 읽게 한다든가 라디오/텔레비전 뉴스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든가 하는 연극적 지표를 사용하여) 극 중 시간적 배경이 과거의 어느 날이라는 점을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든가, 아니면 지금의 한국사회에 어울리도록 대본을 좀 더 각색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