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고 담백한데 몰입감 있고 여운 있는 영화. 김종관 감독의 작품에선 늘 남다른 감성, 섬세함이 묻어난다. <더 테이블> 영화도 한정된 공간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만으로 호기심, 몰입감, 긴장감, 여운까지 담아냈다. 이렇게 품 안 들이고 퀄리티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찰나의 리얼리티
영화는 카페의 한 테이블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철없던 전 남자친구와의 재회, 다시 시작되는 사랑, 비밀리에 진행되는 약속, 이제 어떤 여지도 없이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남녀의 만남. 그렇게 아름답지도 절절하지도 않지만 리얼리틱한 대화와 섬세한 감정선이 돋보인다. 오전 11시, 맥주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남녀. 여전히 철없는 옛 남자 친구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말투, 표정. 2시 30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킨 남녀. 섭섭함과 기대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남녀의 대화, 가진 것 없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가난한 청년. 늦은 오후 뜨거운 라떼를 주문한 두 여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데 위장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한 여성의 치밀함, 안타까움 그리고 모성애까지 느껴지는 장면. 늦은 저녁, 식은 커피와 홍차를 마시는 남녀. 아슬아슬하고 도발적인 사랑 앞에서 용기 없어 포기하는 남녀의 모습. 그들의 대화와 눈빛, 한숨, 호흡 하나하나가 리얼리틱하다. 어떤 흥미로운 기승전결이라기보다는 정말 한 카페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만남 가운데 그들의 대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미장센
가볍게 시작된 남녀의 대화에서 마지막 테이블의 손님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의 수위는 더 깊어진다. 시간의 흐름, 낮과 밤의 온도 차이를 테이블에 있는 꽃병 물의 투명도 등으로 느낌을 잘 전달한다. 점점 탁해지는 물의 색감, 어둡고 짙어진 음향. 간단한 미장센으로 영화의 호흡을 설명한다.
소소하고 현실적인 인물
찌질하면 찌질한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그 나름대로, 섭섭하면 섭섭한대로, 숨기고 싶은 그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인물들. 너무 자연스럽고 안쓰럽고 공감되고 웃기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이 2시 30분의 남자. 한 여자 앞에서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주섬주섬 꺼내 보이며 진심을 전달한 그. 여행을 다니다 산 오래된 태엽시계를 건네는데... 그 남자가 꼭 그 시계와 같고, 감독의 성향이 그와 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소박하고 투박하고 수동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누군가의 손길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똑딱똑딱 자신만의 시간을 알려줄 거 같은 사람. 그의 영화, 그의 감성, 그의 결, 그가 그려낸 인물들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