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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힐 Jan 22. 2021

널 만난 날 (feat. 대환장 출산기)

2020년 11월 20일 밤 11시~새벽 5시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심한 진통이 있었다. 그래도 규칙적인 진통이 아니라 병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벽 4시 정도, 화장실 갔다가 피를 봤다. 병원에 전화하니 당장 오라고. 양수가 터진 거면 바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새벽 5시. 급히 옷을 입고 자는 신랑을 깨워 병원으로 향했다. 정밀검사를 했고 양수가 터졌다고 했다. 당장 입원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진통이 세니 빨리 아기가 나올 거 같다고 했다.


2020년 11월 21일 오전 7시~밤 11시

양수 부분 파수, 약간의 미열, 지지부진한 진통. 좋은 상태는 아니라 했다. 양수가 파열되고 열이 있으면 아기한테 위험하다고. 진통 세기가 더 강하고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항생제와 촉진제 투여 유도분만을 시작했다.

나는 내 상태가 그렇게 안 좋은지 몰랐다. 급히 인터넷을 서치해보았는데 잘 모르겠고, 담당 원장님의 자세한 설명이 없어 의아했다. 원래 진료를 봐주시던 원장님은 휴진이라 당직 원장이 진단하고 진행했다. 당직 원장은 프라이드가 강한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질문할 때마다 내 질문을 오해했는지 날카롭게 답했다. 나는 마음이 상했고, 당장이라도 병원을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언제 어떻게 아기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었다. 원장은 자꾸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나는 그분에 대한 신뢰가 깨고 의욕이 꺾였다. 원래 자연분만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지지부진한 진행속도, 장시간 진통으로 심신이 지쳐있어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고 싶었다.

밤 11시까지 진통 세기가 지지부진했다. 상황은 위험하다고 하는데 진행은 더뎠다. 걱정이 차 오르고 제왕절개로 빨리 아기를 낳아야 하는 건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됐다. 그래도 아직까지 유도분만을 진행하고 있으니 의료진의 진단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2020년 11월 22일 새벽 3시~ 저녁 5시 45분

새벽 내내 강한 진통이 왔다. 신음소리와 함께 골반을 치켜세웠다. 엉덩이와 골반이 너무 아파서 치켜세우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다. 지난밤도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별로였는데 새벽 내내 진통을 겪으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힘들고 절박하니 쉼 없이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의료진을 신뢰하라는 마음, 그래도 결과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거라는 믿음을 주셨다.

'그래.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

밤새 진통을 겪고 아침 맞이했다. 기운은 없었지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병실로 향했다. 신랑에게 기대 병실로 내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잘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뒤를 돌아보니 새로운 얼굴의 간호사였는데... 마치 천사가 힘을 북돋주러 온 거 같았다. 누군가의 격려가 이토록 힘이 되다니...우리 부부는 큰 위로를 받고 병실로 내려갔다. 원장은 없었고 원장의 오더를 받은 간호사가 촉진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강하게 촉진제를 맞을 거예요.


오늘도 아기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촉진제를 높여 투여한다고 했다. 진행이 원활히 안되면 제왕절개로 출산해야 된다고 했다.

촉진제를 맞으니 진통 세기가 더 강해졌다. 끙끙대며 진통을 견뎠다. 몇 시간 후 자궁문이 3센티 열렸고 규칙적으로 진통이 세지면서 자궁문이 조금씩 더 열리기 시작했다. 이제 분만실로 이동해 출산을 준비하자고 했다. 희망의 빛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출산하는 것인가?' 촉진제를 끊고 분만실로 들어갔는데 자연스럽게 진통이 더 세졌고 출산이 임박해짐을 느꼈다. 무통주사를 맞을 거냐고 해서 고민 1도 안 하고 맞겠다고 했다. 무통주사를 맞고 약 2시간 평화가 찾아왔다. 막판 스퍼트를 위해 힘을 비축해두라는 간호사.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며 좋아하는 찬양을 흥얼거리며 그 시간을 누렸다.

2시간 후, 다시 허벅지, 골반, 허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하면서 진통이 느껴졌다. 자궁문이 10센티 열렸고 대망의 힘주기 타임을 맞닥뜨렸다. 다른 건 몰라도 힘주기는 자신 있었다. 임신 내내 변비를 달고 다녔기 때문에 세게 힘주는 건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기필코 힘주기 10번 안에 아기를 출산하겠노라'

간호사님이 힘 잘 준다고 칭찬을 해주시자 나는 더욱 죽기 살기로 힘을 줬다. 아기가 쭉쭉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두 번 정도만 힘주면 나올 거 같네요.
원장샘 부를게요.


간호사님이 원장에게 콜하고 드디어 마지막 힘주기! 두 번 만에 힘을 꽉 주고 피를 왈칵 쏟으며 아기를 출산했다.

응애~ 응애~


오후 5시 46분 아기가 태어났다. 눈물이 쏟아졌다.

세상에... 아가야... 잘 나와줘서 고마워...


신랑이 핏덩어리의 탯줄을 잘랐고, 아기는 내 가슴 위에 올려졌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작고 따뜻한 생명체가 나를 포근히 안아줬다.




약 이틀간의 진통 끝에 출산을 했다. 다행히 나도 아기도 건강하다. 출산 당일까지 맘 졸이며 기도해준 가족, 친구들,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또 진통 시 같이 호흡해주며 수족냉증 산모인 손과 발을 주물러준 신랑에게 무한 감사를... 똥도 치워주고ㅜ 부정적인 원장샘과는 다르게 계속 격려해주고 힘줄 때 큰 도움을 주신 이름 모를 간호사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그래도 원장님도.. 회음부 잘 꿰매주셔서 감샤합니다.)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 작년 11월 22일 나의 출산기. 새 생명이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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