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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힐 Jan 22. 2021

2주간의 조리 (feat. 코로나 속 산후조리)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기. 코로나로 인해 가족 면회 일절 금지, 남편도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간다기에... 남편도 조리 겸 (?) 같이 2주간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남편과 함께 산후조리한 게 잘했다 싶다. 신생아 돌보는 방법을 같이 공부할 수 있었고.. 출산 후 아내의 몸과 감정의 변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거 같기 때문이다.



1일 차 : 아기를 예정일보다 일주일 앞당겨 낳아서 예약한 방은 차있고, 특실만 남아있어 본의 아니게 좋은 방을 쓰게 됐다. '이렇게 넓고 좋은 방이었다면 진작 특실로 예약할걸' 하면서 3일 동안이나 좋은 방에서 잘 누렸다. 첫날부터 호텔 같은 방 때문에 기부니가 좋았고, 맛있는 밥에 기분이 업 됐었다. 당시엔 아이를 낳고 '이제 고생 끝 행복이다'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 첫날은 맛있게 밥을 먹고, 모자동실 시간에 아기 잠깐 보고, 방에서 유튜브로 아기 울음 교육 영상을 시청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은 못 잤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2일 차 : 소문난 맛집이라.. 여전히 밥 맛있었고, 몸은 아직 온전치 않았지만 잘 쉬면서 지냈다. 가슴 마사지받으러 오라고 전화를 받고 가슴 원장님(?)을 만났다. 유선 트이게 하는 마사지를 해준다고 해서 그분께 내 가슴을 맡겼다. '워메.. 왜 이렇게 아픈겨ㅜ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원래 이렇게 받는 건가?;;; 너무 아팠는데 모유가 잘 나오게끔 하는 마사지라니 끝까지 참고 받았다. 그 후 저녁이 되자 젖이 단단해지고 너무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이게 뭔 일이지?' 너무 아파서 잠을 한숨도 못 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축을 해서 젖을 빼야 통증이 사라지는 거였다.


3일 차 : 오전에 전신 마사지를 받으러 오라고 해서 조리원 위층의 에스테틱 방으로 갔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잘 눕지도 못했는데... 마사지 관리사가 왜 유축을 안 했냐고 놀라며 물었다. '유축?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유?' 무지한 나는 이때부터 모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고 모유로 인해 조금씩 눌리기 시작했다. 가슴은 엄청 아픈데 젖은 조금 나왔다. 다행히 가슴통증은 유축 후 나아졌다. 아기가 어차피 젖을 못 무니까 (아기 입이 아직 힘이 없어서) 수유도 설렁설렁했다. 몸이 아직 온전치 않으니 조리를 더 우선시하고 싶었다. (나중에 그 죄책감과 후회의 쓰나미를 맛보게 됐다는...) 모자동실 시간에 보는 아기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아직 살짝 낯설기도 하고 내 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남편은 아기를 정말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계속 안고 있었다. 나는 내 몸 컨디션 걱정, 앞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당장 모유도 잘 안 나오는데 (모유는 그냥 많이 나오는 건 줄 앎)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건지 등등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 고민들이 차올랐다. 아이를 보며 나는 자꾸 한걸음 물러서서 고민을 하게 됐다. 반면에 부성애 넘치는 남편을 보며 '나는 왜 이러지? 나는 왜 모성애가 없는 거 같지?' 나 스스로에게 의아했다.


4일 차 : 특실에서 준특실 방으로 옮겼다. 방도 작아지고 아이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몸도 빨리 회복이 안 되는 거 같아 마음이 우울했다. 모자동실 시간에 만난 아이는 항상 컨디션이 좋았는데 이날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우리 부부는 안아도 보고 토닥여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는 아기 앞에서 우왕좌왕 진땀을 뺐다. 그러다 갑자기 기저귀를 확인해봐야겠단 생각에 기저귀를 열어보니 크~ 구수한 떵을 한 바가지 싸놓은 것. 똥을 닦아주는데 손이 덜덜덜 떨렸다. 너무 작은 아이의 작은 엉덩이를 닦아주는데 행여나 아플까, 불쾌하지는 않을까... 우리 부부는 옥신각신 서로의 의견을 펼치며 겨우 새 기저귀로 갈아줬다. 똥 닦고 기저귀 가는 방법도 서로 이렇게 다르다니...;;; 우리 부부.. 육아에 대한 시비(是非)가 이때부터 시작된 거 같다.


5일 차 : 산부인과 검진이 있던 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회음부가 잘 회복되고 있었다. 오로도 잘 나오고. 보고 싶었던 원장 샘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웠다고 말하며 어젯밤 그린 그림을 보여드리며 이메일로 보내드리겠다고 깜짝 선물이라며 깜짝 발언을 했다. 원장샘은 약간 당황하셨지만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10달간 잘 진료해주셔서 감사했다. 조리원에 돌아와서 유축을 했다. 계속 유축하고 있지만 젖양이 아직 적었다. 그래도 5일 차에 아기가 젖을 많이 빨아줘서 기분이 좋았다. '장하다! 우리 딸!'


6일 차 : 주일이라서 오전에 영상통화로 예배를 드리고, 남편과 나눔을 하고 하루 종일 잠자며 푹 쉬었다.


7일 차 : 남편이 전신 마사지 한번 더 받으라고 해서 오전부터 마사지를 받았다. 골반이 많이 틀어졌다고 해서 급 우울해졌다. 파라핀에 손을 담갔는데 손목, 손가락 마디가 너무 아팠다. 뼈가 약해서 그렇다는데... 손이 계속 아프니까 걱정이 됐다. '계속 이렇게 아프진 않겠지? 이제 집가서 이것저것 해야되는데...'


8일 차 : 모유양이 늘었다.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기뻤다. 여동생은 나보고 초능력이 생긴 거 같다며 엄마의 특권인 모유가 생성되는 신체의 변화를 보며 경이를 표했다. 초능력이라... 그러고 보니 아기를 낳았다고 몸에서 모유가 나오는 거 자체가 신기하긴 하네. 모유양은 조금 늘었지만 아직 아기가 잘 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젖을 억지로 물리니 토하기까지 해서 이거 모유수유할 수 있을랑가 걱정이 됐다.


9일 차 : 조리원에서 계속 탱자탱자 쉬기만 했던 내가 다른 엄마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열성 있는 엄마, 꼼꼼한 엄마, 야무진 엄마 다들 강단 있어 보였고 좋은 엄마, 강한 엄마처럼 보였다. 나는 조리원에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쭈구리에 소심한 엄마인데... 과연 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아기를 내가 지켜줄 수 있을까, 내가 엄마 자격이 있을까 등등 갑자기 비교와 함께 자책과 함께 우울감이 몰려왔다.


10일 차 : 오전에 요가 교육이 있어 요가를 했다. '틀어진 골반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요가를 따라 했다. 방에 돌아와서도 스트레칭을 열심히 한 하루.


11일 차 : 응급처치 교육을 받았다. 아기가 갑자기 아프면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알려주심. 이 조그만 아기가 아프면 당최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도 하기 싫은 여러 상황들이지만 일단 열심히 듣고 정리해뒀다.


12일 차 : 이제 조리원 생활도 조금밖에 안 남았다. 보고 싶은 드라마 다 보고 나가야지. 철없는 엄빠는 산후조리원에서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정주행했다. 리얼 공감, 싱크로율 100% 소름 돋는 드라마였다. 산후조리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감정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듯. 웃고 울며 드라마를 시청했다. 코믹하면서도 진지하면서도 심오한(?) 드라마.


13일 차 : 마지막 날. 퇴소 교육으로 아기 목욕 교육이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 방에서 직접 시연해주셨다. 와... 이걸 어떻게 한담. 일단 동영상 찍어놓고 조심조심 관찰했다. 마지막 날 밤, 잠이 안 왔다. 조리는 했지만 아직 엄마 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거 같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막연히 걱정은 됐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퇴소 날을 맞이했다.


14일 차 : 오전에 조리원을 퇴소했다. 퇴소 후 바로 아래층 소아과에 가서 아기 예방접종을 맞았는데... 정말 조리원 밖에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신랑은 소아과에 못 들어왔고 아기랑 나, 단둘이 있는데... 갑자기 우는 아기...아기 짐을 들고 있는 나는 무척 심란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나 잘할 수 있을까?' 소아과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코로나가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는데 산후조리원 풍경도 많이 달라진 거 같다. 가족들이 와도 면회할 수 없고, 모든 교육이 각방에서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지금 돌아보면 유일한 육아공동체인데 육아 고민 털어놓을 한 사람도 못 사귀고 퇴소한 게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일명 조동이라고 조리원 동기가 정말 끈끈하다고 하는데 수다나 정보 공유는커녕 인사도 못했다. 그렇게 방에서만 지내는 산후조리원인데 남편도 없었다면 우울증 걸렸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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