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나의 삶 안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보고 느낀 것, 내가 경험한 모든 것, 그 과정 안에 보배 같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실패와 성공, 아름다운 추억과 후회되는 일, 내 삶의 흔적, 나의 깨달음. 나의 삶을 추적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본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출발!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뿐이랴. 글쓰기는 만인에게 공평하다.
- 은유의 <쓰기의 말들>
유년시절
할머니와 살았던 유년시절. 가혹했다고 말하는 엄마의 시집살이. 시집살이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아이. 비둘기와 대화하고, 생떼 부리면 원하는 장난감을 다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만 행복했던 4세 아이. 아빠는 무역업을 하셨고, 엄마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였다. 아빠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수출 무역업 사업을 막 시작하셨고, 초창기엔 신문에도 나올 정도로 일이 잘 풀렸다. 엄마는 나를 낳고 몇 년 뒤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셨다.
엄마 말로는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아이였다고 한다. 어떤 작은 자극이라도 스치면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한다. 엄마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두려움에 사색이 돼 발악하듯 울어댔다고 한다.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잘 안 자고 엄마 속을 많이 썩인 모양이다.
엄마가 나를 배었을 때도 혹독한 시집살이는 계속됐다. 엄마는 혼자 많이 울고, 외로웠단다. 나의 예민한 성격이 형성된 이유 중 하나는 시집살이 탓이란다. 아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처음 경험해보는 시집살이에 엄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예쁨 받고 자란 딸이 찬밥 신세에, 구박에, 엄마의 세계가 흔들리고, 보호받지 못했다.
초등학생 저학년
그래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나는 밝고 따뜻한 아이로 성장했다. 이사 가기 전까지 나의 초등시절은 행복한 기억이 많다. 동네에서 골목대장처럼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놀이터에서 게임을 진행하며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꽤 활발하게 지냈다. 엄마를 돕기 시작했다. 동생 기저귀를 갈고, 청소를 했다. 엄마에게 칭찬받는 게 좋았다. 공부도, 성적도, 친구 문제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어린 나의 유토피아 세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초등학생 고학년
아빠의 사업이 위태롭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때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갔다.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전학생인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관심을 갑자기 받으니 놀라기도 했고, 위축도 됐고, 기분도 좋았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히 적응했다. 5학년 때는 내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같은 반 남학우 5명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 갑자기 인기녀로 등극. 친구들끼리 다이어리를 돌아가면서 쓰는 유행이 있었는데 나도 으레 여학우들과 함께 일기를 썼다. 친구들은 내가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아서 부럽다고 적었다. 난생처음 경험해본 인기녀와 부러움의 대상(?) 그 호화로운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지만 새로운 곳에서 사람이 충분히 신분세탁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초등학생 6학년. 내 나이 13살, 인생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다. 그럼 그렇지. 초등학교 고학년 생활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나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여학우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이미 형성된 단짝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나에게 오게끔 하고 싶었다. 이간질은 금방 들통나버렸다. 청문회가 시작됐다. 그 친구를 비롯해 그녀의 단짝 친구들, 총 3명이 나를 취조했다. 왜 거짓말을 했으며, 왜 이간질을 해서 사태를 이 지경을 만들었으며, 너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그날 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불어난다는 것, 거짓말은 정말 안 좋다는걸!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집에 와서도 하루 종일 울고, 며칠을 식음 전폐하며 다짐했다. 절대! 네버!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지! 아무리 작은 거짓말이라도 절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