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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힐 Jan 06. 2020

[책] 쓸 만한 인간 : 가볍고 따뜻한 위로의 일기장

쓸 만한 인간/ 박정민/상상출판

새해 첫 책이 <쓸 만한 인간>이라니...의도하지 않았는데 재밌게 술술 읽혀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여동생의 덕질에 나도 참여하게 된 것. 배우 박정민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은 철없는 남동생 혹은 마음 따뜻한 오빠 같기도 한 누군가의 일기장 같았다. 또 연기에 대한 열정과 파이팅은 누구보다 강하고, 배우로서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가볍고 따뜻하고 재밌는 글 속에서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요새 읽는 책이 어려운 책이라서 그랬는지 잔뜩 긴장하면서 읽다가도 박 배우의 에세이를 보면 이상하게도 힘이 풀리고 편했다.


박 배우의 생각의 파편을 공유해본다. (네모 칸 글은 책의 인용글입니다.)


첫 마음...처음의 열정...

어딘지 모르게 모든 게 당연해져 버려 예전 같은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나름의 열정이고 애정이었던 행동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뒷전이 됐고,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선배들의 몇몇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하기도 한다.

이제는 충무로의 블루칩이라 불리는 그는 어엿한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초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초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처음 그 열정과 애정을 기억하고 소환하는 그 마음을 응원한다. 초심 잃지 않는 멋진 배우로 있어 주길...


박 배우의 위로와 격려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식욕억제기능이 마비되는 이 날씨에 바싹 긴장하시고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나가시길 바란다. 내 방식대로 예전에 가졌던 그 열정, 그리고 그 방법. 다시 한 번 유념하고 해나가려 한다.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이 쌀쌀한 외로움과 귓구멍을 간질이는 우울감을 털어버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다 잘 될 거다.
하룻밤만 자면 연말이 연초가 돼버리니까 다시 마음먹으면 그만인 셈이다. 그저 작년보다 올해가 조금만 더 나이스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올 한 해 어떤 성장을 이루셨는지, 그리고 내년엔 또 어떤 성장을 이뤄내실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아마 잘 모를 거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어제보단 오늘이 더 낫다. 당신들의 성장판도 평생 열려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모두 올 한 해 수고 많으셨다.

다 잘 될 거라고,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수고하셨다고, 힘내시라고 지속적으로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 담백하고 투박하게 반복적으로 건네는 위로가 내심 마음을 따뜻하게 채운다. '그래도 이 사람, 위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따뜻한 사람이구나.'를 동시에 느낀다. 바싹바싹 말라가는 세상 속 공기이기에 늘상 위로와 격려의 환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식상한 위로일지라도 지겹도록 들어야 겨우 하나 마음에 심겨지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꿈, 연기

아직도 집중 받는 걸 극히 혐오하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선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인간이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서 연기를 합니다." 화도 잘 못 내고, 좋으면 좋은 티도 안 내고, 눈치 보고, 쭈뼛쭈뼛 전형적인 찌질이의 모습이 싫어서, 연기를 한다고 얘기한다. 무대 위에선, 카메라 앞에선 내가 화내는 걸 사람들이 이해해주니까. 내가 웃는 걸 사람들이 건방지다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연기를 한다고 얘기한다.

본인이 찌질이여서 무대에서만큼은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내가 느낀 바로는 찌질이의 찌도 못 따라가는 훌륭한 사람이다. 수많은 이유와 결단과 결심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 열정 하나만 붙잡고, 명문대를 자퇴하고 맨땅에 헤딩한 친구다. 그것이 가치있는 고민과 결단인 것은 모르겠으나 그래도 찌질이라서 연기를 했다는 것은 너어무 겸손한 계기 같다.

못하는 것도 없지만 잘하는 것도 딱히 없는, 잘생기지 않았는데 개성 있게 생겼다기엔 한 끗이 부족한, 못돼 처먹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걸 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아주 애매한 선상에 위치한 인간, 이른바 과도기적 인간, 나쁘게 말하면 그냥 좀 찌질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랬었던 한 소년이, 곱슬머리 안경잡이 공붓벌레 구타유발자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한 한 학생이 지금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면 큰어머니들이 "우리 정민이는 인물이 훤해. 잘생겨서 좋겠다."라고 습관처럼 그 실언들을 내뱉지만 않으셨어도 본인은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솔직히 정민이가 잘생긴 건 아니지. 연기파지 연기파."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약간 비하 개그 같기도 하지만 재치 있고 솔직하게 치고 빠지는 그의 문체가 재밌다. 과하게 멋 부리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고, 종종 나오는 문법 파괴 문장도 매력적으로 소화했다. 자신이 찌질이라고 하는 것도, 외모에 자신 없다고 말하는 것도 매력적으로 소화한다. 그리고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연기파 배우라는 자신감을 은근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정말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열정이 강하고, 많이 공부하고 배우고, 자신만의 철학까지!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연기를 잘한다!


자신만의 해방구를 찾아라!

"찌질이들이여 해방구를 찾아라." 분명 해방구는 있다. 미국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되는 게 해방구라면 뭐 그것조차 해방구는 존재하니 해방 좀 하자는 거다. 너무 그렇게 찌질하게 방 안에서 자책하고 있을 필요 없다. 좀 잔인하지만, 사실, 세상은 당신들한테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크게 걱정 말고 해방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란다. 얻어맞고 다니기 일쑤였던 한 소년이, 딱 12년 후 한 영화에서 누군가를 쥐어패기도 하고 그런다. 놀라운 일이다.

일단 해방구 자체는 존재하니 설사 상상만으로도 해방 좀 하자는 그의 발상이 웃프기도 하고...그래도 그의 말처럼 방구석에서 우울하게 자책만 하는 것보단 해방구를 상상하다 보면 나만의 해방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 기적은 한 걸음,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길이 보이기도 안 보이기도 하는 거니까. 거창한 의미부여와 동기부여보다 미국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웃음 짓게 된다. 이 책이 잠시나마 나의 해방구가 되었다.


그의 소신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듯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 때를 기다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서른일곱 살의 박원상 선배님이 스무 살의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다. 술 먹고 하신 말씀이라 본인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당시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배우 지망생 박정민은 아직도 그 문장을 마음에 품고 지낸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참 어려운 좋은 말이다. 충실히, 성실히 하면서 또 절실한 마음으로 아주 길게 그 길을 가는 것. 올 한해는 어떤 상황과 명예와 부와 상관없이 꾸준히 샘솟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나만의 (멋진) 슬로건을 내걸었는데...새해 시작된 지 6일만에 아니 하루 하루 심지가 약해 흔들리고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본다. 참 조급하고, 원하는대로 안되면 쉽게 맘이 상하고, 쓸데없이 비교하고, 빨리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다시금 나를 다잡는다. 욕심부리지 말고, 꾸준히 성실히 길게 샘솟는 기쁨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보자.

나랑 소싯적에 길바닥에서 소주 좀 마셨던 친구가 이제는 어엿하게 몇십만 원짜리 양주 먹는데 어찌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엄마 차 끌던 친구가 지금은 벤츠 타는데 어찌 그것이 부럽지 않겠는가. 부러워 죽겠지. 그래서 애써 그렇게 늘 마음을 다스린다. 하지만 또 조급해지는 철없는 20대가 돼버린다. 그렇게 조급함과 다스림을 반복하는 20대 후반의 본인은 다시금 박원상선배의 말씀을 되새긴다.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 때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충실하게 절실하게 하자. 뭐 이러다 또 조급해지기 마련일 테지만 꾸준히 해보려고 노력한다.


강한 사람

이러한 강박증세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또 다른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하게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길 바란다. 혼자 갖고 있으면 곪는다. 뱉는 순간이 어렵지 뱉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박 배우에게 강박증상이 있었다니.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주 작은 일부를 공유했을 뿐인데 괜히 인간미가 느껴지고 친근해진 느낌이다. 그의 성장 과정, 또 알지 못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캐릭터가 형성되고, 불필요한 강박증상이 생겼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나씩 아프고, 불필요한 것이 달려있을 것이다. 이것이 곪아 터지지 않도록 잘 매만져주고, 오히려 삶의 좋은 자극이 되도록 이끌어보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쓸 만한 인간


요새 덕질은 참 다채롭구나 생각했다. 하도 재능도 많고 능력있는 스타들이 많으니 덕질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감사하기도 할 거 같다. 여동생의 덕질에 우연히 참여했다가 일부분 함께 덕질을 하게 됐고, 당분간 덕질이 유지될 거 같다.


글이란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또 그로 인해 생각을 주고받고 한 뼘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모습만이 아닌 따뜻한 사람이구나, 재밌는 사람이구나, 속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뜬금없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글에 대한 자신감(?), 동기부여(?)도 생겼다. 나도 좀 더 힘을 빼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써볼까?라는 생각이 든 것.


어쨌든 그는 참으로 쓸 만한 인간이었다. 러모로. 그리고 지금은 열심히 연기를 하고...배우로서 쓸 만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 책을 좋아해 책방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쓸 만한 인간인 것 같다.


쓸 만한 인간이 건네주는 재밌고 따뜻한 위로, 산문집이었다. 여동생이 언젠가 꼭 만나서 책에 직접 싸인을 받고 싶다고 하던데... 꼭 만났으면 좋겠다. (나도 같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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