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이한 자부심1
"네? 정말요? 그게 가능한가요?"
우리 신혼집 가격을 말하면 보통 이런 반응을 보인다. '목동' 지역이라는 말을 하면 한 번 더 놀랜다. 어느 순간부터 자부심이 생겼다. 서울에서 나보다 저렴한 전셋집에 들어간 사람을 아직 본 적 없다. 아! 한 분 있었구나. 내가 존경하는 알짜배기 언닌데...대학로 근처에 저렴한 전셋집을 구했다 들었다. 언니 리스펙! 유 아 윈!
그래도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있는 집을 구한 건, 기적이고 행운이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만한 전셋집을 구할 수 없다. 정말. 지금에 와서야 더 절감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모아둔 돈이 없었다. 쉬지 않고 일하며 성실히 살아왔지만, IMF, 아버지 사업 부도, 학자금 대출 등 타격이 컸다. 신랑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알바하며 빠듯하게 돈을 모아 생계를 책임졌고, 군대 제대 후 갓 취업한 새내기 직장인이었기에 우리에겐 쌓아놓은 자금이 없었다.
최대한 덜 빌리고, 있는 돈으로 저렴한 집을 찾기로 했다. 결혼을 앞두고 4~5개월 전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네이버 부동산, 각종 어플을 보며 시세와 지역 분위기를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었다. 먼저 지역을 선정해야 했다. 신랑 직장을 고려하고, 친정, 시댁, 교회와 가까운 지역 곧 북서쪽 5호선 근방 매물을 알아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가격대의 집은 보통 지하, 역에서 먼 곳, 외진 곳, 언덕이 많은 곳이었다. 가까스로 찾은 좋은 매물은 이미 계약이 돼 버렸다. 쉽지 않았다.
뭣도 모른 우리는 5천 집을 알아보았다. 서울에 그런 집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긴 있었다. 어둡고, 외진 곳에, 귀신이 나올 법한 그런 곳에, 곰팡이가 피고, 벽지가 갈라진 오래된 집이 그랬다. 그런 집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그날 신랑이랑 괜히 말다툼하고, 집에 와서 시리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정신 차려야 했다. 잘 찾아야 했다. 기도를 많이 했다. 간절히 기도했고, 뭔가 기도를 들어주신 거 같은 느낌이 온 그날! 어김없이 인터넷으로 집을 보고 있었는데 원하는 가격대에 매물이 나온 것. 냉큼 전화해보았다. 와서 직접 매물을 보라는 거. 느낌이 좋았다. 신랑과 함께 시간을 맞춰 찾아갔다. 그런데 이미 그 방은 나갔단다. 그래도 오셨으니 다른 집을 한번 찾아봐 주겠다고, 여러 매물을 보여주셨다. 본인 지역에 있는 매물을 다 보여준 후 지역을 좀 넓혀서 다른 부동산 하고까지 연결해서 집을 알아봐 주셨다. (고마운 분 *.*) 부동산 네트워크가 잘 돼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건너 건너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복비를 나눠 가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날 행운의 집을 만나게 됐다. 목동에 역세권에 (정말 역하고 1분 안팎 거리) 깔끔하고 환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8000만 원 전셋집을 구한 것!!! 어머니와 딸, 모녀가 살고 있었고 12평의 깨끗한 집이었다. 도배도 최근에 한 듯했고, 집도 환하고, 심지어 사시는 분들도 맘에 들었다. 이건 바로 계약 각! 그날 보고, 그날 바로 계약을 했다.
사실 1억 2천, 1억 5천에 넓고, 깨끗한 좋은 집도 봤었는데 지역과 주변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집에 딱 들어갔을 때 분위기나 느낌이 집집마다 달랐는데 나는 그 느낌과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우리 신혼집을 고른 것. 추가로 집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신혼집에 입성했다.
우리 둘만의 공간이 생기니 기뻤다. 가구를 하나씩 들이고, 인테리어를 구상하고, 배치하고, 아기자기하게 신혼집을 꾸몄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은 집이 너무 아담하다고,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놓았다고 칭찬해주었다. (내심 뿌듯) 작은 집이지만 둘이 살기에 충분했고, 따뜻했다. 역이 바로 앞에 있으니 뚜벅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편의시설도 가까워 편했다. 밤에도 주변이 밝아 맘 놓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시련이 찾아왔다. 우선 집이 너무 낡았다는 점. 창틀, 문, 문틀, 각종 모서리, 틀이 죄다 나무였다. 그래서 창과 문이 자주 삐거덕 소리를 냈고, 좀벌레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좀벌레. 맨처음에 이 아이를 봤을 땐 정체도 몰랐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좀을 먹고 사는 벌레라는 걸, 나무를 좋아하고, 어둡고 따뜻하고, 습한 곳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행히 몸에 해로운 벌레는 아니었고, 바퀴벌레 수준의 벌레는 아니었다. 간단한 좀벌레 퇴치약을 사서 구석구석 덫을 놓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방역업체에 전화해 보니 2번 정도 소독하면 없어진다고 하는데... 아토피가 심한 신랑은 독한 약을 집에 뿌리는 걸 꺼렸다. 내 속도 모르고 '그냥 같이 (벌레랑) 사는 거지 뭐...우리집이 친환경집이라 그래'라고 말하는 신랑이 얄밉다.
또 다른 시련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 우리집은 5층. 그래서 택배 기사님들한테 쿠사리를 먹는다는 점, 낡은 화장실이라서 청소를 해도 해도 더러워 보이는 느낌, 방음이 잘 안 돼서 옆집 문자 온 소리도 들린다는 현실, 꼭대기 층이라서 여름에는 상상초월로 덥다는 점....
이제 곧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오는데... 내가 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조만간 이사를 갈 거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직 아이도 없고, 집에 정도 들었고, 이만한 집을 구할 수도 없고, 이사하면 또 이것저것 신경 쓰고 돈이 또 나가니 그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2년간 더 아끼고 모아서 더 좋은 집으로 가고 싶기도 하고...
'이사 가야지!' 다짐했다가도 '아니야. 지금 충분히 살만한데...조금만 더 살아볼까?'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생각보다 집에 정도 많이 들었고, 좀벌레만 빼면 사실 나쁘지 않다. 역도 가깝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우리집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이렇게 빨리 헤어지는 게 아쉽기도 하다. 일단 좀벌레 퇴치 방법을 더 연구해보련다.
추가로 최근 집을 알아보면서 내 집 찾기 TIP을 정리해보았다.
정말 매일매일 새로운 매물이 올라온다. 직접 발로 뛰며 찾아다니는 건 한계가 있고, 인터넷을 잘 활용해보길 바란다.
정말 사기 치는(?) 부동산이 너무 많다. 인터넷에서 봤던 매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갔을 때 없는 경우도 있고, 갑자기 가격을 올려서 말하기도 하고, 저렴한 집 찾는 이들에게 귀찮다는 듯,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이번에 우리 집 앞에 있는 부동산은 정말 좋은 공인중개사임에 틀림없다. 저렴한 가격대에 퀄리티 있는 집을 원한다고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정말 원하는 가격대에 좋은 집을 보여주시고자 애를 많이 써주셨다. 지도도 프린트해주시고, 집을 볼 때마다 문자로 집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보내주셨다. 친절하고 꼼꼼하게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지금 당장 이사를 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꼭 이 부동산을 통해 가려고 한다.
벽지, 바닥, 틈, 벌레 약들이 있는지, 물 수압, 빛이 잘 들어오는지. 방문이 잘 열리고 닫이는지 등등. 집 보러 갔을 때 가구나 세입자가 있을 시 자세히 보기 어려운데 꼼꼼히 보길 추천한다. 전에 깨끗하게 도배한 좋아 보이는 집이 있었는데 약간 기울어져서 그런지 벽 아래쪽에 틈이 벌어진 곳을 보고 식겁했다. 나중에 관리하기도 어렵고 벌레가 딱 좋아하는 틈이라서 바로 퇴짜!
정부 지원이나 각각의 은행의 다양한 대출 상품을 비교해보고 가장 저렴한 대출 이자 상품을 택하는 게 좋다. 내 주변인도 본인은 나름 저이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더 좋은 조건의 대출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아쉬워했다.
꾸준히 청약하고 있는데 사실 청약에 대해서 잘 모른다. 정말 청약 당첨되면 대박일 텐데... 좀 알아보고 공부해봐야겠다. 분기별로 공고가 올라오긴 하던데 매번 꼼꼼히 살펴보기가 어렵다. 청약 당첨된 분들 보면 너무나 부럽다. *.* 나도 언젠가!!!
요새는 정말 전세와 매매가 별반 차이가 없는 거 같다. 하지만 매매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전세만큼 대출이 많이 되지도 않고, 나중에 손해를 안 보고 팔려면 위치, 방갯수, 평수를 잘 확인해야 한다. 최근 목동에 방3개에 올수리된 집이 매매 1억 8천에 나온 것을 보고 전화해보니 지하란다...지하래도 너무 깨끗하게 잘 수리됐고, 매매에 대한 로망 때문에 '걍 사볼까?' 잠깐의 고민이 있었지만.. 고수님들이 말하길 지하는 정말 비추한다고 하여 마음을 접었다. 부동산에서 말하길 매매할 때는 무조건 방3개, 넓은 평수 (3,4인이 살 수 있을 정도), 역세권을 추천한다고 한다. 오래 살기에도 팔기에도 이 조건이 좋다는 거. 전세는 오히려 새집이나 (새집 매매는 너어무 비싸니까 차라리 전세로) 작은 집에서 잠깐 살 바에는 전세가 낫다고. 뭐 상황에 따라 전세도 오래 살 수 있는 집도 있지만... 굳이 매매와 전세를 따졌을 때 기준을 이렇게 말해주셨다. 10~20년된 오래 된 집도 관리가 잘된 집은 나쁘지 않다.
살면서 나무가 이렇게 안 좋은 건지 처음 알았다. 나무는 시멘트와 콘크리트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되니까 나무로 된 창문과 방문, 모서리 들이 많이 상한다. 창문 열 때마다 '낑낑' 거리며 힘을 써야하기도 하고, 햇빛이 잘 안 들어오고, 습기가 많은 날엔 쉽게 축축해진다. 그리고 나무는 벌레들이 좋아한다.
벌레들 중 특히 좀벌레가 좀을 먹고 살며, 나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낡은 집에 좀벌레가 종종 등장한다고 한다. 이놈의 좀벌레 때문에 비싼 나무 가구도 버리고, 가구 위치도 종종 바꾸었다.
옛날에 지은 빌라는 보통 엘리베이터가 없다. 운동할 겸 나쁠 건 없지만 노인, 환자, 임산부, 택배기사에겐 좋지 않은 거 같다. 또 계단도 높은 빌라들이 간혹 있는데 (우리집) 너무 가팔라서 몇 번 오르다 보면 정말 숨이 찬다.
옆집과 같이 사는 느낌 같은 느낌? 그녀들의 수다떠는 소리, 문자 오는 소리, 한밤중 노래, 영화 소리. 분명 다른 집인데 공유하고 있는 이 느낌 같은 느낌. 웃프지만 때론 괴로운 소음들.
낡은 집은 필수적으로다가 자주 환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습도도 올라가고, 공기 순환도 되고, 벌레들도 없어진다. 곰팡이 방지에도 효과적이다.
집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햇빛은 중요하다. 적당한 광합성을 해야지 몸이 건강해지듯 집도 햇빛을 쫴야지 소독도 되고, 집이 환해지고 쾌적해진다.
낡은 집인 만큼 관리를 부지런히 해주어야 한다. 자주 청소해주고 관리해야지 그마나 깨끗해 보인다. 청소는 나의 기관지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고, 벌레 방지에도 좋다. 청소를 합시다.
낡고 좁은 집에 가구가 적은 게 좋다. 특히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곳에 가구를 배치해두면 가구 뒤에 쉽게 곰팡이가 생긴다. 무조건 환풍이 잘되게끔 배치하고, 가구수가 적게 있는 게 좋다. 좁을수록 수납 공간, 공간 활용이 잘 되는 가구가 좋다. 안 보이면 깨끗해보인다. 잡다구리한 것들을 수납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매우 좋다.
곰팡이 내지는 벌레 방지를 위해서 가구를 자주 옮겨주는 게 좋다. 옮기는 게 가능하다면 주기적으로 가구 배치를 새롭게 해보자. 기분전환도 되고, 쾌적한 집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