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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Feb 19. 2019

단색화가 정말 한국 미술을 대표할까요?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마주한 슬픈 실상

단색화 작품 **억에 낙찰! 한국 미술 쾌거!


아마 이런 뉴스를 한 번쯤 접한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몇 년 전까지 단색화가 마치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이고, 해외에서 잘 나가는 것처럼 그려졌었죠. 그런데 미술계 내부 반응은 시큰둥하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저는 작년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모노크롬 기획전을 보고 취재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한국 단색화 빛 좋은 개살구?'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제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단색화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요즘은 단색화를 치켜 세우는 목소리도 뜸해졌지요. 


단색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런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해드리겠습니다. 


단색화 = 단색조의 회화


단색화를 영어로 하면 모노크롬입니다. 그리고 이걸 풀어서 설명하면, '색이 (거의) 없는 그림'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미술에서 단색화라는 건 1960년대~1980년대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아 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회화들을 가리킵니다.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박서보 작가의 '묘법'  (1981) 출처: 뮤움

그런데 이들 그림은 그려진 당시만 해도 '모노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이들은 이우환 작가가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국내에 알려진 미니멀리즘 회화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경향을 띄곤 했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모노크롬을 한국어로 한 '단색화'를 그대로 영어로 옮긴 dansaekhwa라는 이름으로 이들 그림이 묶이기 시작했습니다. 서구 미니멀리즘과는 다르게 수행의 의미와 백색에 의미를 부여해 한국적인 미학으로 재해석해 시장에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해석에는 몇 가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데요, 그걸 살펴보기 전에 먼저 런던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모노크롬 4년 연구한 큐레이터, '한국 단색화 처음 들어봤다'고.


제가 런던을 찾은 작년 2월 경,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모노크롬: 페인팅 인 블랙 앤 화이트'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14세기 스테인드글라스부터 21세기 설치미술까지 세계의 모노크롬(단색화)을 통시적으로 다룬 기획전이었죠. 마를렌 뒤마(남아프리카공화국)나 척 클로스(미국), 브리짓 라일리(영국) 등 동시대 작가도 다수 포진했는데요. 놀랍게도 모노크롬을 그대로 옮겨서 만든 사조인 한국 단색화는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시를 4년 동안 준비했다는 큐레이터 렐리아 패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전시 기획 의도나 배치 등 여러가지를 묻고 '혹시 한국 단색화는 왜 포함하지 않았냐'고 조심스레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패커는 "미안하지만 한국 단색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작가의 이름을 이야기해줄 수 있냐"고 하기에 이름을 읊었지만... "미안하다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런 결과가 제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단색화는 불과 몇 년 전부터 상업 갤러리에서 작품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기획성 미학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거든요. 


몇몇 미술계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단색화 열풍의 근거로 말해졌던 대부분의 것들은 해외 경매 실적인데, 경매에서는 구매자가 공개되지 않기에 거래실적만으로는 신뢰도를 높이기 어렵다."


즉 구매자가 이것의 가치를 정말로 알아보는 사람인지, 아니면 투기성으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누군가의 구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단색화는 거래 실적에 관한 이야기는 많아도 학술적 연구는 빈약한 실정입니다.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게다가 내셔널 갤러리처럼 연구, 교육이 목적인 공공기관은 역사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데 사실상 지금까지 제시된 미학으로 봤을 때 한국 단색화는 미니멀리즘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학술적 연구도 별로 없고, 그래서 패커도 처음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리처드 바인 아트 인 아메리카 편집장이 세미나로 한국을 찾았을 때도 비슷한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단색화는 뒤처진 모더니즘 회화로 보일 우려가 있다.(그림만 봐서는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이를 적극적으로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미학 무엇인지 차근차근 정립해야


한국 작가 작품의 존재감이 없다니 우울하지만, 국내 미술계의 문제를 다시 돌아볼 계기로 삼는다면 슬플 것도 없습니다. 


단색화가 한국적인 요소로 제시한 '수행'이나 '백색'이 과연 한국적인지 다시 따져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수행'적 의미는 과정 미술에서도 볼 수 있는 요소로 한국 미술만의 특징이 전혀 아닙니다. 박서보 작가의 묘법은 싸이 톰블리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독창성을 의심받을 우려도 있습니다. 

미국 작가 싸이 툼블리의 1970년대 작품


그리고 '백색'이 한국의 미라는 건 일제강점기 잘못된 식민 사학에서 비롯된 왜곡이라는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 당시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백색을 한국의 색이라고 했는데, 이는 구한말의 아주 일시적 현상에 불과할 뿐 한국인들은 아주 화려한 색을 즐기기도 했거든요.


그럼 한국의 미를 뭐라고 봐야 할까요? 짧은 글에서 다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저는 박생광 작가의 작품이 개성과 독창성 넘치는 한국의 미술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생광 작가의 1980년대 작품

힘이 넘치는 화려한 색감,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미지가 가득한 이런 그림이 '한국 미술계에 어떤 작품이 있냐'고 물을 때 제시할만한 작품이 아닐까요?


물론 이 작품이 전체를 대변할 순 없겠지만, 이제는 서구 미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보다는 적절한 작품들을 다시 보고, 우리의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노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수 년 뒤에 또 '그 예술은 처음 듣는다'에 슬퍼해야만 하겠죠. 그렇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저도 노력할 것이고.. 미술계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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