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 Apr 15. 2019

데이비드 호크니전, 가격얘기뿐이라 아쉬운사람을 위한 글

Tate 큐레이터와 짚어본 '데이비드 호크니'전의 놓쳐선 안 될 포인트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개막 약 일주일 전,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의 편집자로부터 책 한 권이 도착했다. 

2012년 출간된 대담집 '다시, 그림이다'

포장을 열어보니 호크니 책. 퍼뜩 든 생각은 "이번주 책 기사로 쓰게 회의에 가져가야지!" 드디어 미술책 기사를 쓰게 된다니 반가웠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출간 연도가 이미 2012년이다. 신간이 아니면 기사를 쓸 수 없는데. 도대체 왜 이 책을 보냈을까? 편집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주가 전시 개막이어서 혹시 참고가 될까 해서 보냈어요. 전시 보도자료를 미리 봤는데 가격 이야기 위주여서 아쉽더라구요. 책에서 좋은 내용이 있으면 마음껏 인용하세요."


  호크니 전시 개막 전부터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낙찰된 작품'이 온다거나, '1000억 대 작품이 온다'는 예고 기사가 많았다. 그 때문인지 전시 기획사에서도 보도자료에 작품 가격을 강조한 모양이었다. 

  간담회날 보니 보도자료 타이틀부터 첫 내용까지 가격에 대한 내용이었고, 편집자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녀가 예고한대로, 간담회 직후 나간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왜 가격 이야기밖에 없느냐"는 푸념을 했다.


왜 이렇게 된걸까?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닿을 홍보 전략을 생각하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가령 '호크니 그림은 ~~한 요소가 있으니 꼭 보러 오셔야해요'라고 설명하면, 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지금 가장 비싼 그림'이라고 한다면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은 쳐다보게 된다.


즉 이 전시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예술적 관점에서 설명하기를 포기한 결과가 바로 '작품 가격 도배' 사태였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그 홍보문구를 보고 온 사람도 왜 전세계 사람들이 '호크니' '호크니' 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50만 명이 본 호크니 회고전(순회 전시까지 합하면 100만 명이 본 전시)을 기획한 큐레이터 헬렌 리틀을 만나 전시의 꼭 봐야 할 포인트를 짚어봤다. 


헬렌 리틀 전 테이트 큐레이터 ⓒOmar Zavala


헬렌과는 전시 개막 하루 전 서울시립미술관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 일정을 잡으면서 기획사 측에 통역 없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는데(통역자가 있으면 마음은 편하지만, 시간도 더 걸리고 왠지 서로 대화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 직접 대화하고 녹음하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게 불안했는지 그녀는 내가 미리 보낸 질문에 답변을 워드로 적어서 갖고 왔다! 


긴 시간 비행을 한데다 시차 적응까지 안되어서 피곤할텐데 너무나 미안해졌다ㅠㅠ.  무척 사려 깊고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니트 가디건에 발목까지 오는 단부츠를 신은, 왠지 전형적인 영국인 같은 스타일의 그녀가 호크니의 그림과도 꽤 어울렸다. 


헬렌이 런던에서 호크니 회고전을 한 것이 2017년이고 그 이후로 그녀는 계속해서 호크니 전시를 담당해왔다. 회고전 당시 테이트 갤러리 큐레이터였지만, 그 전시 이후로 전세계 호크니전에 참여하며 지금은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적어도 5년 넘게 호크니에 매달린 만큼 그의 작품과 삶의 여러 예시를 들어가며 상세히 설명해줬다. 아래 내용은 내가 전시를 본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합해서 정리한 것이다. 


'테이트 소장품'으로 구성한 전시...'영국 작가' 호크니 조명


"호크니를 이해하려면 그의 모든 활동을 봐야 합니다. 회화와 사진, 드로잉 작품을 각각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골고루 봐야하죠.
호크니는 20세기 중요한 판화가로도 여겨질 정도로 많은 판화 작품을 했어요. 그런 작품도 포함된 것이 테이트 컬렉션이고, 이번 전시는 그 컬렉션을 아시아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헬렌에 따르면 호크니는 의도적으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했다. 진지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작가가 한 가지 매체나 스타일에 묶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테이트 컬렉션이 '국립 컬렉션'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호크니의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호크니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나오는 설명이다.


"호크니가 아주 다양한 재료와 관점에서 작품을 했지만, 그 아래에는 하나의 공통된 원리가 있습니다. 바로 '3차원의 세상을 어떻게 평면에 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죠. 전시장에 펼쳐진 호크니의 60년 동안의 작업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전시를 보기 전에 호크니의 '더블 포트레이트'(2명이 함께 있는 초상화)를 모은 기획 전시도 런던에서 봤었다. 그 전시에서는 대형 유화를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때 본 기억과 이번 전시를 보고 나서 '왜 지금 호크니인가'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1. 미술사적 전통을 마음대로 골라쓰는 '혼성모방'

2. 난해한 예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화려한 시각언어(신표현주의)'

3. 피카소의 재해석으로 확보한 '대중성'


시골의 보수적 교육, 뒤이은 진보적 도시 런던과의 만남


전시장 초입에서 볼 수 있는 호크니, The First Marriage, 1960-1968년.
"호크니는 요크셔에서 태어나 그곳의 브래드포드 아트스쿨에서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곳 학생들은 정물이나 대상을 아주 자세히 관찰하는 교육을 받죠.
호크니는 이 학교를 졸업하고 런던 로얄컬리지오브아트에 공부하러 가서야, 자신이 배웠던 것과는 다른 진보적 시각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전시장 초반에 볼 수 있는 회화 작품 'The First Marriage'를 보면 인물을 완전히 측면에서 본 모습을 표현했다. 이는 미술사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고대 이집트의 벽화 스타일을 흉내낸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전시의 장점은 1960년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 때 유명한 작가들은 추상회화를 그렸는데, 호크니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주제의 작품을 했어요.
그가 그림에 구체적인 형상을 넣은 건 매우 의도적인 것이었죠. 또 그래피티나 문자를 결합해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헬렌에 따르면 호크니는 미술사에 대한 아주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영감을 얻지만, 호크니 역시 테이트 갤러리와 브리티시 뮤지엄을 자주 들락거렸고, 거기서 본 시각 언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호크니는 르네상스 회화는 물론 고대 이집트 조각과 프란시스 베이컨 등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스타일을 혼합하면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평면성/재현성, 구체성/추상성 등 여러 시각 언어를 오가면서 캔버스 위에 공간과 환영을 어떻게 만드는지 다양한 방식을 탐구한 거죠."


여기서 재밌는 건, 호크니가 미술사를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시간 순서대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 순서에 상관없이 마치 물감처럼 여러 시대의 시각 언어를 골라서 사용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 모방'이라고도 하는 방식으로,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 사이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전략이다. 


적당히 친숙하면서, 적당히 새로움을 줄 수 있는 미술사적 전통의 다양한 활용. 이것이 호크니가 요즘 미술계 관객에게 사랑 받는 첫 번째 이유다. 



개념에 지친 대중 매혹하는 화려한 시각 언어, '신표현주의'

소실점 원근법을 뒤집은 작품 '호텔 우물의 경관III' 1984년 © David Hockney / Tyler Graphics Ltd.,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나는 헬렌에게 호크니의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최근 새롭게 미술사에 편입된 '신표현주의'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신표현주의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 구체적 형상을 드러내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작가들은 모두 생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 축에 속한다. 


그녀는 "과거 팝아티스트로 분류됐을 때 호크니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신표현주의 회화가 주목받으면서 새롭게 맥락을 찾은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말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이 전방위에 있을 때도 호크니는 늘 구체적 형상을 그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어요.
1980년대가 지나고 신표현주의가 등장한 뒤에야 미술사적 맥락을 찾으면서 위치를 찾기 시작했고요. 한편 이 때부터 호크니는 사진과 입체파, 중국 서화를 탐구하고 그 결과를 작품에 활용했습니다.


2층에서 볼 수 있는 'Moving Focus' 연작이 그 연구의 결과물들이다.


호크니는 카메라와는 전혀 다른,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고민했다. 카메라가 1가지 시점을 중심으로 보는 전통적인 아카데미 회화의 방식을 따르지만 인간의 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하나의 결론은 여러가지 시점을 한 그림에 넣은 입체파가 가장 위대한 묘사라는 것이다. 헬렌은 "이 시기(Moving Focus)가 호크니의 작품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며 "관객이 이 섹션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가 재밌게 본 건 호크니의 변화를 꺼려하는 영국인 스러움이다. 당시 최고 주류였던 미국과 프랑스의 화가들은 앞다투어 추상을 그리고, 거기서 개성을 찾고자했는데, 호크니는 촌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구체적 형상이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걸 꾸준히 밀고 나간 결과, 사람들이 난해한 개념미술에 질릴 즈음. 다시 촌스러움이 화려함으로 조명을 받게 됐다.

(이는 절대 이러한 방식만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가 생존하는 방법은 수백, 수천가지가 있고 호크니는 그 중 하나의 예시에 불과할 것이다.)


예술가 앞 벌거벗은 모델 '호크니', 결국은 피카소


호크니의 판화 'Artist and Model', 1974년


2층의 또 다른 재밌는 전시장은 바로 '블루 기타' 갤러리다. '무빙 포커스'를 보기 전 지나치게 되는 이 갤러리는 호크니가 어떻게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는지 설명해준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렸던 '피카소와 영국 근대 예술가들'이라는 기획전도 맡았던 헬렌은,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아주 많은 영국 작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 호크니라고 했다.

 

"'블루 기타' 판화 중 '아티스트와 모델'이라는 작품을 눈여겨 보세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피카소와 호크니가 앉아있죠.
호크니는 벌거벗은 채로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데, 저는 아주 겸허한 자세로 자신의 그림을 스승에게 보여주는 학생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 '다시, 그림이다'에서도 호크니는 "피카소와 마티스는 세상을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반면, 사진은 따분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했다.


현실을 2차원 평면에 담는 하나의 수단인 사진을 보면서, 그 한계를 인식한 호크니는 '포토 콜라주' 같은 시도를 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들이 놀랍도록 피카소와 큐비즘의 연장선이다. 

 

소름이 돋았던 건, 우리나라 관객이 '피카소'를 그토록 좋아하는데, 이 피카소가 질릴 무렵 다시 관객이 몰리는 쇼가 호크니라는 것.


그의 작품이 사실 특별한 철학이나 미학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재현의 방식에 천착해 마치 눈으로 먹는 사탕 같은 작품을 만들어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것은 좋은 예술가가 보여줄 수 있는 멋진 능력임에 틀림없다.


여담.


헬렌에게 '너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질문을 큐레이터를 만나면 항상 하는데, 언제나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지금 하고 있는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지" 


그녀도 똑같이 말했다. 


"마지막 전시가 최고의 전시라고 하잖아요. 테이트가 갖고 있는 호크니의 소장품을 구석구석 들여본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죠."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렸던 호크니 회고전으로 흘렀다. 


"회고전이 짜릿했던 건 전시의 규모가 정말 거대했다는 거에요. 테이트 갤러리 역사상 가장 큰 쇼였고, 작품을 찾는 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죠."


'다작'한 작가인 호크니의 작품 500~600점 중 전시할 작품을 고르는 것도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사무실 복도에 호크니 작품이 가득 차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고 그녀는 떠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본 호크니의 표정도 인상깊었다고 했다. 작가도 작품이 팔리면 그걸 오랜 시간동안 못 본다는 걸 저도 그제서야 알았다며. 그리고 개막날 호크니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줬다.


"나 생각보다 꽤 괜찮은 그림들을 그렸었네, 그렇죠?"




매거진의 이전글 단색화가 정말 한국 미술을 대표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