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딩크를 원하던 내가 아이를 생각하게 되다.
나는 늘 결혼은 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갖고 싶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경쟁적인 사회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달픈 일인지 뼈저리게 느껴왔기에 내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거나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으로서 부모라는 역할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나는 어린 시절이 즐겁지 않았기에 그 삶을 부모로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캐나다에 온 후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큰 충격이랄까, 마음을 뒤흔든 건 현지 부모들의 육아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지켜본 육아는 온 집안의 어른들이 아이 하나에게 쩔쩔맬 정도로 집중된 형태였다. 집마다 육아 방식과 문화가 다르겠지만 대체로 육아의 중심이 부모가 아닌 아이였다. 그러나 캐나다의 육아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육아의 주권이 부모들에게 있어 아이들에 대해 단호한 편인 내가 보기에도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냉정하고 이성적인 대처가 많았다. 아이에게 과하게 맞춰주거나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각 부모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게 보였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마냥 따뜻하게 품어주고 희생적 일정도로 헌신하는 “이상적인 엄마”상은 그저 나의 고정관념에 불과했다. 부모로서 더 중요한 자질은 아이를 대할 때 지키고 싶은 원칙과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은 가치관이 분명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 방식대로,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중심인 채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 동시에 늘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던 내가 우리 가족 구성원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둘 만의 아이와 함께 하는 부부들을 보며 세상에 하나뿐인 유대감을 발견했고 그 모습이 난생처음으로 부러웠다. ‘우리에게도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차에 하루빨리 내가 대학원에 진학해 직업적으로 정착하기를 바라던 친정 부모님이 넌지시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남편은 아이들을 좋아해 예전부터 아이를 원해왔고 시댁 역시 손주를 바라셨기에 우리 부부와 양가 부모님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침 남편의 학교 보험 커버 기간을 따져봐도 앞으로 4,5개월 정도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해 볼 수 있는 시기였다. 평생 딩크를 꿈꿔왔던 내게 감정적으로, 상황적으로 아이라는 요소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다. 아이에 대해서는 늘 이성적으로 과할 정도로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움직이니 머리가 거부감 없이 수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