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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era Jun 04. 2020

[임신 일지/#4] 몸의 변화, 그리고 생각의 진화

겪어 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느글느글한 입덧 증상 완화를 위해 차이 루이보스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물병에 티백 하나를 넣고 하룻밤이 지나면 진하게 우러나온다. 향이 강해 차를 약간만 따르고 물을 많이 부어 수시로 마셨다. 맛있지는 않았지만 속을 진정시켜주는 듯했고 2,3일이 지나자 갑자기 입덧이 조금 사그라든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는데 (음식 먹기 전후로 차멀미 정도의 울렁울렁함이 있었다.) 그마저도 가라앉은 듯했다. 계속 맵거나 신 것과 개운한 것만 찾았던 전 주와 달리 인스턴트 없이 집밥으로 저녁 먹기에 성공했다.  

    울렁거림이 없어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막상 증상이 사그라드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보면 하도 흉흉한 이야기들이 많아 불필요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다. (가능하면 인터넷은 필요한 정보 찾을 때 빼고는 멀리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게다가 캐나다는 한국처럼 불안할 때마다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니 (간다 해도 해주는 것도 없다.) 그저 '사랑이가 잘 있겠거니'하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입덧은 조금 나아졌지만 무기력함은 계속돼서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또는 앉아서 보냈다. 의미 없이 시간 낭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무언가 하고 싶은 체력도 기분도 아니어서 그냥 짜증이 난 상태로 하루하루가 갔다. 몇 년 만에 핸드폰 게임도 해봤지만 그 마저도 머리가 아파 금세 그만두었다.  

    이 시기에 임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일하는 or 첫째를 보며 둘째(혹은 그 이상)를 임신 중인 분들을 존경하게 됐다. 나라면 심신이 따라주지 않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을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임신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다. 임신 전에는 막연히 후기로 갈수록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중기가 제일 컨디션이 좋고 개인에 따라 초기 혹은 후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후기는 제삼자가 겉으로만 봐도 그 힘듦이 조금이나마 와 닿지만 초기는 아니다. 남들은 전혀 모르는데 나 혼자 갑자기 컨디션이 난생처음 겪는 수준으로 바닥을 치니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이런 변화들에 대해 마땅히 학교에서 성교육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누구나 하는데 유난이냐, 옛날에는 더 힘들었다, 유별나게 굴지 마라' 등의 무식하고 배려심 없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교육이 선행되어야 사회 분위기나 제도적으로 임산부와 그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임신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일을 겪어 보기 전까지는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마주치게 되는 상황은 한정적이고 세상 모든 일들을 경험으로 체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여러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학교에서는 지식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제도적 차원에서 타인, 특히 약자들을 보호하는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이 보다 따뜻하고 관대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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