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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era Jun 20. 2020

엄마의 배추 된장국


똑똑-
가볍게 나무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9개월 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환했다. 오랜만에 봐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처음 온 우리 집도 마치 수십 번 드나든 곳처럼 엄마는 우리 집에 들어왔다. 사랑이를 낳기 일주일 전이었다.
인천에서 토론토까지 비행기로 13시간, 토론토에서 런던까지 다시 차로 2시간. 캐나다 런던이라는 이름도 낯선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를 보기 위해 엄마는 그 긴 시간을 왔다. 오래간만에 본 반가움에 우리는 웃고 떠들며 함께 짐을 풀었다. 엄마는 큰 캐리어를 두 개나 가져왔지만 엄마의 짐은 채 한 개 분량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우리를 위해 한국에서 공수한 각종 먹거리였다. 개중에는 비닐봉지로 이중으로 싸고 플라스틱 통으로 다시 한번 봉한 외할머니의 된장이 있었다.
작년에 한국에 들어갔다 왔을 때도 이 된장을 가져왔었다. 이것만 있으면 엄마의 된장국을 재현할 수 있다며 야심 차게 가져온 재료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끓여도 내가 만든 된장국은 제대로 된 맛이 안 났다. 어떤 날은 된장 향만 겨우 스칠 정도로 밍밍했고 또 어떤 날은 혀가 아리도록 짜기만 했다. 분명히 엄마가 넣으라는 대로 넣고 끓이라는 대로 끓였는데,  희한하게도 엄마 맛은 안 났다. 이게 바로 손맛인 건가, 거듭된 실패로 씁쓸해진 나는 어느 순간 된장국을 끓이지 않게 됐다.
“배 안 좋을 땐 된장이 최고야. 배추 넣어서 된장국 좀 해주고 그래.”
장이 안 좋은 남편을 위해 엄마는 된장국을 끓였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된장 색과 맛이 변한 것 같다며 엄마는 아쉬워했지만 내 입에는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었다. 담백하고 구수한 된장 국물에 배추에서 우러나온 달큼함이 배어 삼삼한 그 맛. 배추 된장국을 좋아하는 남편은 하루 걸러 나오다시피 하는 엄마표 된장국을 매번 맛있게 먹었다. 장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엄마와 남편에게는 마치 보약 같은 음식인 듯했다. 장 하나는 튼튼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세계였다.
어릴 적 엄마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엄마와 중학교 동창인 아빠는 엄마가 공부 잘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알고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학력고사 날 엄마는 늘 약하던 장이 탈이 나버려 시험을 망쳤다. 외할아버지는 여자가 공부한다며 못마땅해하시는 옛날 분이셨고 엄마는 대학에 가려면 장학금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엄마는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갔다.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고 공부에 뜻이 컸던 엄마에게는 평생의 한으로 남은 일이었다.  
배가 아플 때마다 된장국을 끓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 없이 공부하지 못하고 뜻대로 살지 못했던 젊은 날의 슬픔이 가슴에 사무쳤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부족함 없이 가르치고 싶었을 거고 어쩌면 엄마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 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내게 엄마의 교육열은 때때로 버거웠고 그 무게에 짓눌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들로 엄마 마음에 비수를 꽂기도 했다.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내가 엄마의 지난날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적도 있었을까.
엄마는 한 달 동안 실컷 된장국을 끓여주고는 내일 또 볼 것처럼 웃으며 떠났다. 텅 빈 엄마방을 보며 며칠 동안 눈물을 훔쳤다. 그 방에 딸 사랑이의 물건이 늘어날 때마다 우리 딸은 나보다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더 큰 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이럴 때면 ‘엄마도 나를 같은 마음으로 키웠겠지’하는 생각에 또 눈 앞이 뿌예진다.
요즘 나는 다시 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구수하고 진한 외할머니표 된장에 무엇이든 적당-히 넣는 엄마의 방식으로. 여전히 엄마의 맛은 안 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문득문득 비슷한 맛이 맴돈다. 엄마 된장국의 비법은 엄마로서의 세월과 그 마음이 아닐까. 언젠가는 나도 사랑이에게 맛깔난 엄마 된장국을 끓여줄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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