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신분으로 산다는 건,
캐나다에 온 후 약 1년 동안 나는 한 번도 한국에 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한국 생각이 나기에는 체류 기간이 너무 짧기도 했고 회사를 다니며 내 성향과 너무나 맞지 않는 한국 사회에 학을 떼고 온 터라 더욱 그랬다. 그런데 임신을 한 후 처음으로 한국이 생각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그리워졌다.
캐나다는 기본적으로 집마다 패밀리 닥터가 있고 그 의사를 통해 전문의를 소개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내가 겪는 증상을 바탕으로 바로 전문의를 찾아갈 수 있는 한국보다 한층 번거롭다. 그러나 이마저도 패밀리 닥터가 있고 보험의 문제가 없을 때의 얘기다. 주 보험이 없으면 패밀리 닥터를 구하기가 힘들고(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캐나다인도 패밀리 닥터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패밀리 닥터가 없을 경우 워크인 클리닉을 가야 한다. 워크인은 보험이 없는 온갖 사람들을 다 받는 곳이기 때문에 좋은 의사를 만나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가 힘들다. 그리고 전문의가 아니니 다른 의사를 소개받는 통로 정도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역시 학교 보험만 있고 패밀리 닥터가 없었기에 임신 확인을 위해 워크인 클리닉에 갔다. 다행히 당일에 그곳에서 피검사는 받을 수 있었지만 초음파는 예약지를 받아 초음파 센터에 내가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고 가야 했다. 산부인과에 가면 피검사며 초음파며 필요한 모든 검사를 한 큐에 받을 수 있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번거로움이다. 게다가 의사와의 문화 차이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갔던 워크인의 의사는 임신은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기본적인 진료 이상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초기 기형아 검사를 요구하는 내게 자기 아내는 임신 중에 의사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봤고 그 마저도 귀찮아했다며 나의 조급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자비로 추가 검사를 받겠다는데도 설득과 애원과 짜증의 과정을 통해서 겨우 검사 예약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내 케어가 의사에서 미드와이프로 넘어간 후로는 한층 섬세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의사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임신 초기에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생각났다. (외국에 나오면 가장 절실히 느끼는 한국의 장점이 의료 시스템이라더니.) 캐나다에 온 지 약 2년 정도 된 지금까지도 캐나다에 온 게 후회되었던 순간이 세 번 정도 되는데 모두 병원 문제 때문이었다. 외국에서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직업도 돈도 사람도 아닌 건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