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원망으로 남기지 말자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대체로 60세 이후의 삶이 될 텐데, 이때의 삶은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삶이어야 한다.
마음의 여유를 말한다. 마음의 여유를 받쳐주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여유도 필수다.
60세 이전에, 20년 동안 노후생활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금은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미래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은퇴 이후 60대, 70대에도 빈곤 때문에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인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노후의 본질을 훼손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부모는 아이들 교육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집 사주고, 사업한다면 사업비용까지 대주면서 정작 본인들의 노후는 준비할 수 없었다. 지금은 대학생 아들과 딸을 둔 L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아내와 이렇게 약속했다.
“여보, 아이들 학원비용은 절대 이 금액을 넘어가서는 안 돼. 우리 노후준비도 해야 하잖아. 이 약속 안 지키면 바로 이혼이야.”
이렇게 아내와 약속하고 노후자금을 저축해 왔다. 내 친구이기도 한 L을 만나 이 얘기를 듣고, 참으로 현명한 처사였다고 칭찬해주었다.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행복한 노후는 어떤 삶이어야 할까? 사랑하고, 여행하고, 운동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래야 젊게 살 수 있다. 젊게 산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러운 일이다.
직장여성 L이 딸에게 말한다.
“나이 50세 넘어가면서부터 남녀가 바뀌고, 여자들은 드세 져. 남자기질이 생겨. 엄마는 외국할머니들처럼 늙을 거야.”
그러자 딸이 이렇게 말한다.
“맞아 엄마, 어쩜 같은 또래인데 한국 할머니들과 외국 할머니들이 다를까요. 한국 할머니들은 왜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요.”
“나는 나이 80이 넘어도 우리 할머니들처럼 호피무늬, 냉장고티 안 입을 거야. 피부 관리도 신경 쓸 거고.”
노년의 삶을 위해 지금 후회스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지금 후회스럽지 않은 삶이란, 현재의 행복도 추구하면서,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만난 어느 여성의 행복한 인생이야기가 노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정신으로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제 나이, 37세 되던 해에 남편이 퇴직을 했어요. 아파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어요. 아이들은 커 가고, 삶이 막막해지더라고요. 남편 병원비에, 아파트 대출금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제 몸과 마음이 많이 위축되고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다지 큰 걱정 없이 주부로서 살던 사람의 추락은 몇 배의 고통이었지요. 월급쟁이 남편의 소중함을 그제야 알게 되었고요.
제가 가족 생계를 위해 취직을 했어요. 혼자벌이로 아이들 고등학교를 보내면서 ‘통장잔고가 50만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절절하게 생각했던 때도 많았습니다. 적은 수입으로 살다보니 빠져나가는 돈이 무서운 시기였어요. 저도 몸까지 자주 아팠어요. 아마도 심인성이었을 겁니다. 남편이 건강해질 때까지 쉴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남편의 병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요. 고생길은 훤하고, 내 어깨의 무거운 짐은 펼 수 없는 날개 같았어요.
어느 날부터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어려운 현실일수록, 초라함과 궁핍함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요. 그 당시 사람들은 제게 “150만원의 수입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정신 덕분에 삶이 유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간소한 생활을 실천한 삶이 돌파구가 되었던 겁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채울 형편도 안 된 것이 한몫 했어요. 수입과 지출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 필수였어요. 정말 필요하고 값진 것에는 몇 달을 모아 과감히 지출했고, 그 욕구가 원망과 분노가 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살았어요. 제가 처한 현실에 집중하다 보니, 간소한 삶이 저절로 실현되었어요.
제가 실직을 하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게 되요. 그래서 지출항목에 자기개발 비용을 항상 넣어두었습니다.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밤에 공부하고, 아침이 되면 또 출근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학원 한 번 안다니고, 원하던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사람들은 놀래요. 학원을 다녀도 떨어지는 사람이 많은데, 저보고 정말 독종이라고요.
다행이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었지만, 취직을 했다가 두세 번 나오기를 반복했어요. 남편이 당시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증도 있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 제게 여유로운 날들을 기다린다는 게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현실도 즐기자고 생각했어요. 애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남편과 함께 한 달에 한번정도 주말여행을 다녀왔어요. 가까운 경기도나 강원도로 나갔다가 왔어요.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저를 사랑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주더라고요. 죽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지금까지 길고도 긴 터널을 지나온 시간이었어요. 현재 저는 작은 전세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네 식구가 살기에 작은 집이지만 저에게는 천국입니다. 달라진 삶이라면 애들이 내년쯤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자녀교육이 종료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주부로서 평범하게 살던 제가 삶이 바뀌어 원하는 일들을 해왔으니 후회는 없어요. 지금까지 했던 공부들이 하나는 본업이 되었고, 또 하나는 노후를 위해 두 번째 직업이 될 겁니다. 요즘도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서적들을 읽으면서 조금은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50만원이 통장에 있었으면 했던 시간들이 추억이 되었어요. 지금은 제 통장에 무려 10배가 되는 500만원이라는 여유자금도 생겼고요. 이건 놀라운 일이네요. 현재 고정수입 2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으로 몇 십 만원씩 저축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요. 간소한 삶이 바꿔놓은 환경이기도 합니다. 노후를 위해서라도 긴장을 놓으면 안 돼요. 하지만 아등바등 살고 싶지도 않아요.
항상 이 마음으로 살아요. ‘죽을 때 아쉬움 없겠니?, 오늘 죽더라도 후회안할 자신 있어?’ 내세울 건 하나도 없는 삶이지만, 간소한 삶을 행복한 마음으로 실천중입니다. 그중 타인들에게 베푸는 마음도 더블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