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옷의 본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드먼드 마운틴 Jul 19. 2018

옷의 본질-브랜드만 찾지 말고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라

거지보다 옷이 없다는 소리도 즐겁다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당신 앞에 세 가지 물건이 놓여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소유하라면 어떤 물건을 선택할 것인가?"

 

1.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 받은 옷이 있다.

2.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다.

3. 내가 아끼는 그릇과 수저가 있다.    

 

사람들은 같은 물건이라도 의미 있는 물건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

일반적인 옷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선물 받은 옷은 특별한 옷이 된다. 책도 그릇도 마찬가지다.

의미가 담긴 세 가지 물건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망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 질문의 경우는 옷이 많았다.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준 선물이라는 의미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선물 받은 옷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왜 책을 선택했느냐고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준 옷은 마음속에 담아 두면 되요. 옷이 없더라도 그 옷의 의미까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책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어버리게 되요. 책은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다시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이것이 내가 책을 선택한 이유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한 옷이 없더라도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마음속에 간직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할 때는 책이라는 형태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잠시 옷의 상징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먹는 음식도, 입는 옷도 상징성이 있다. 집이 상징하는 것은 휴식이다. 집은 깨끗함, 단순함 속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음식은 무엇을 상징할까? 건강을 상징한다.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골고루 잘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그렇다면 옷은 무엇을 상징할까? 멋을 상징한다. 자기 스타일을 찾아 옷을 잘 갖추어 입는 사람을 멋쟁이라고 부른다.   

  

인류 역사에서 옷은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유일하게 옷을 입고 생활하는 생명체는 인간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도 집을 짓고, 음식은 먹지만, 옷만은 인간의 작품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인간이 옷을 입는 행위는 다른 동물이 할 수 없는 위대한 사건 중에 하나다.

이러한 옷이 이제는 가정마다 넘쳐나서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옷만 남기는 간소한 삶을 살고 싶다면 옷장 정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안 입는 옷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가지고 있고 보자.’는 욕심 때문이다. 인간은 집에 대한 욕심, 음식에 대한 욕심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듯이 옷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지금 입지는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옷들이 있다. 살이 빠지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 다시 입을 수 있는 희망적인 옷, 비싸게 주고 산 옷, 추억이 있는 옷, 사람들 마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내 몸에 찾아와 한동안 함께 즐겁고 기분 좋게 지냈으면 보낼 때는 미련두지 말고 과감히 보내주어야 한다. 물건을 만나고 헤어짐에 연연하지 말자. 옷은 옷일 뿐이다. 그저 물건일 뿐이다.


옷에 대한 미련과 추억은 머릿속과 가슴에 담아 놓자.


남편에게 선물로 받은 원피스일지라도, 딸이 떠준 스웨터일지라도, 친구가 사준 니트일지라도, 버릴 옷은 냉정하게 버려야 한다. 굳이 집에, 내 옆에 보관할 필요가 없다. 공간만 차지할 뿐이다.

참고로 옷들이 한 공간에서 분산되어 있는 집이 있다. 장롱 안에도 있고, 옷걸이에도 걸려 있다. 의자에 걸쳐놓은 옷도 있다. 옷이든 책이든 이렇게 여러 군데 있으면 보기 안 좋다. 산만해 보인다.

   

안 입는 옷을 버리기 쉬운 가장 좋은 방법은, 죽는다고 생각하고 버리면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지금 죽는데 이거 다 가져갈 수 있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해본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물건이 아니라, 삶에서 내가 몇 년 동안 잘 입었던 과거의 미련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김국환씨의 노래 ‘타타타’에 우리가 입는 옷과 관련해서 인생을 돌아보는 가사가 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이 한 문장이 마음을 울린다. 인생과 옷에 대해 깊은 생각을 던져준다. 이런 마음이면 불필요한 옷에 대한 집착을 놓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그래서 꼭 필요하고 즐겨 입는 옷만 남겨두자.   

  

어떤 주부는 이렇게 얘기한다.


“5년, 10년 뒤에 입을 거라고 생각하고 옷을 쟁여주는 일은 부질없어요. 복고라고 하나요. 유행은 돌고 돈다. 언뜻 맞는 말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형태가 변해 있어요. 예를 들면 스카프를 샀어요. 1년, 2년 되니까 컬러와 무늬가 다 바뀌더라고요. 겉옷이나 외투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옷 종류는 뭐든지 1, 2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옷을 처분할 때, 가족끼리 서로 입혀보고 평가해 주는 방법도 좋다.


예를 들면 신상이라고 사 놓았는데, 아무리 본인이 좋아해도, 입으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옷이 있다.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 너무 안 어울린다. 그러면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자각이 되고 실천이 잘 된다.   

  

이제 옷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애기를 해보자.


집에만 있는 주부는 그래도 시간이 있지만, 직장 다니는 주부는 정리하고 싶어도 출퇴근 하느라고 바쁘다.

직장 다녀오면 지쳐서 옷 정리는 엄두도 못 낸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 일로 시간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못하면 계속 못하게 된다.

옷 정리를 하려면, 다시 강조하지만, 옷은 과거의 미련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정리가 쉬워진다. 그러면 옷 정리도 즐거워진다.    


옷장을 열어보자. 일단 현재 입는 옷들은 한쪽으로 놔두고, 묶은 옷부터 정리를 하자. 

옷을 상품, 중품, 하품으로 분류하자. 상품은 꼭 입어야 하는 옷, 중품은 애착은 가지만 잘 입지 않는 옷, 하품은 과감히 버려야 하는 옷이다.


일단 주저 없이 버려도 되는 하품 옷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뜯어진 옷이나 색깔이 바래진 옷, 늘어진 옷, 눈길이 가지 않는 옷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품은 한두 번 입었거나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있다.


옷을 구입할 당시에 마음에 들어 샀는데 잘 못 샀던 옷들이 있다. 집에 와서 보니 마음에 안 든다거나 한두 번 입었는데 잘 안 입게 되는 옷들이다.


이 옷들을 처분하려니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계속 가지고 있어야 짐만 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 입고 어울리는 상품의 옷만 남기자. 그것이 나와 함께하는 옷들이다.     

작년에 K는 안 입는 옷을 상당히 줄였다. 아깝다는 생각 안하고 처분했다.


올해 계절이 바뀌면서 옷장 정리를 다시 했다. 계절별로 좋아 하는 옷을 5벌만 남겼다. 이게 쉽지만은 않았다. 봄옷만도 20벌인데 여기서 15벌을 처분해야 했다.


여름옷은 계절상 조금 여유 있게 8벌로 했다. 이렇게 안 입는 옷을 정리해서 일부는 의류수거함에 넣고 왔다. 나머지는 알뜰장터에 내다 팔 생각이다. 이렇게 하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옷장 쪽수가 세 개인데 거의 3분의 1로 줄인 것이다. 어떤 때는 출근하기 위해 옷을 고를 때,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서 좋긴 했다.     


K가 작년에 옷을 처분할 때 딸이 이렇게 물었다.


“엄마, 이렇게 옷을 없앨 필요가 있어요? 그냥 두고 바꿔 입으면 되잖아요.”


K가 그 소리에 이렇게 대답했다.


“입지 않을 옷들을 충동구매로 사놓고 옷장에 모셔두면 출근할 때 옷 고르기도 힘들고, 입는 옷만 입기 때문에 굳이 숨 막히게, 먼지 쌓이게 놔둘 필요 없잖아. 너도 알다시피 대부분 여자들은 옷 매장 들러서, 순간적으로 예뻐서 옷을 구입하거나 집에 와서 몇 번 입으니 그 다음부터는 질려서 안 입게 되는 옷이 많잖아. 그래서 내 몸에 찾아와 웃지 않는 옷들은 무조건 처분하고, 옷을 구입할 때 생각을 많이 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고르는 게 현명한 방법이야. 너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자 딸은 엄마 말에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K가 지난 시절에 옷 욕심, 신발욕심에, 돈 생각 안하고, 매주 옷 매장 가서 몇 십 만원씩 쇼핑 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도 옷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K는, 겉옷은 꼭 좋은 제품을 사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입어 보면 질이 확실히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K는 값싼 옷 몇 벌 사느니 마음에 드는 옷 하나 사는 선택을 했다. 10만 원 하는 옷 3개 보다는 30만 원 하는 옷 하나를 사서 질리지 않게 입었다.    

 

K의 친구 중에 강남 최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옷이 다 합해서 20벌도 안 된다. 돈이 없어서 옷을 안 사는 게 아니다. 간소한 삶을 추구하면서 옷을 대폭 줄인 것이다.

K는 그 친구를 볼 때, 같은 옷이라도 잘 코디해서 입으니 볼 때마다 세련되어 보인다고 칭찬한다. 친구의 시어머니가 집에 와서 옷장을 열어보고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한다.


“얘야, 너는 어째 거지보다 옷이 없구나.”


이 친구는 직업이 없으니 가능하지만, K는 직장인답게, 최대한 춥지만 않게 갖추어 입자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다짐한다.


‘숫자를 줄이자. 단순하게 살자. 내 스타일을 지향하자.’    


몇 년 전부터 K는 생각이 바뀌어, 옷은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잘 보이고 싶은 예절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K는 집에 있다가도 경비아저씨에게 택배 왔다고 연락 받으면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집에서 입던 옷 입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복장을 갖추어 입고 나갔다.

수면바지 입고 가지 않았다.


K는 예절이라는 측면에서 옷의 본질에 충실했다.

K의 딸은 자라면서 눈과 머리에 이런 엄마의 옷차림 행동이 고스란히 기억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