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족과 행복한 사람은 밖에서도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낸다. 집에서 책상을 깨끗이 하는 사람은 직장에서도 책상을 깔끔하게 사용한다. 집에서 웃음이 없는 사람은 밖에서도 웃음이 어색하다. 집안의 물건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집 밖의 물건도 가볍게 여긴다. 사실 대부분의 행복과 불행은 집에서부터 싹이 튼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집을 대할 때도 예의가 필요하다.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면, 집이 가장 안락한 공간이 된다. 집은 당신의 의지에 따라서 사람이나 돈이 해줄 수 없는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놀라운 일 아닌가? 도대체 집을 어떻게 대하면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건지, 이건 우리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집이 우리 삶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집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재테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다. 집이 자기 것이냐, 전세로 사느냐의 소유 문제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또는 어느 동네에 사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의 집과 부자의 집을 비교하자는 것도 아니다. 집은 당신의 얼굴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집에는 집주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집을 방문해 보면 거기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집안의 청결, 정리정돈, 색, 빛, 냄새, 물건의 상태, 실용성, 단순함을 통해 주인과 집하 고의 관계가 좋은지 나쁜지 파악할 수 있다. 게으른지, 부지런한지뿐만 아니라 집주인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지도 알 수 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람은 세상의 변화하는 추세 속에서 균형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다. 혹독하게 표현하면 마이너스 인생이기도 하다. 아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말자. 용기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집안의 청결과 물건 정리는 기본적인 일이지만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쉬우면서도 힘겨운 일이다.
왜 그럴까?
예를 들면 방문 유리창이 더러운 데도 닦지 않는다. 가구나 화장실 변기에 찌든 때가 보이는 데도 지나친다. 냉장고 위에 먼지가 쌓여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놔둔다. 아이들 책과 장난감에 걸려 넘어질 정도인데도 정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에 때가 묻었거나 외출할 옷에 얼룩이 있으면 당장 닦거나 세탁한다.
집안 청소와 정리는 그것이 귀찮고 힘든 일이고, 사람들에게 당장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미루어도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나만 괜찮으면 되니까.’, ‘다른 사람이 안 보는데.’, 이런 마음이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즉시 그리고 꾸준히 의지력을 내기가 쉽지 않다. 당신이 원래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당신 마음이 지치고 즐겁지 않을 때, 집에 대해서 게으르고 무책임한 주인이 된다.
보다 큰일을 이루려면 그것이 작은 일일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청소와 정리를 게을리하는 사람이 더 큰일을 행복하게 잘할 수 있을까? 청소와 정리가 안 되면 삶의 발전과 행복은 점점 멀어진다. 그건 행운이 찾아오는 길을 막아버리는 셈인데,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행운이 잘 찾아들어올 수 있도록 청소와 정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도 얼굴빛이나 옷차림, 먹는 모습에서 복이 들어오는 사람이 있듯이 집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집에 행운이 찾아올 수 없다. 먼지가 쌓이고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인 집에는 행운이 들어올 수 없다. 행운은 빛을 좋아한다. 행운은 그 빛을 따라 틈새로 들어온다. 물건이 많은 집은 어둠과 습기만 좋아할 뿐이다. 집안이 깨끗해지면 자녀들이 더 맑고 밝아진다. 행운이 찾아오는 소리는 맑은 아이들이 더 잘 듣는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먼지투성이와 복잡한 집으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
먼지가 쌓여있는 집은 주인이 나태하다. 이런 집은 빚(채무)이 쌓여가는 집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행운이 왔다가도 도망간다. 정리가 안 된 집의 주인도 나태하다. 이런 집은 갈등과 불화가 있는 집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구별되지 않는다. 어떤 집이건 행운은 정갈하고 깔끔한 틈새로 찾아온다.
집의 목적을 단지 우리가 밥 먹고, 잠만 자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집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가족들이 행복하다, 편안하다, 아늑하다, 다시 가고 싶다고 느끼는 집이 있다. 어떤 집은 가족들이 각자 생활한다, 지저분하다, 물건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칙칙하다, 어둡다고 느끼는 집이 있다. 이 느낌 또한 집의 규모와는 상관없다.
집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집주인을 알 수 있다.다시 강조하지만, 그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해 보라. 친구는 닮아가기 때문에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말이 있듯이, 집도 주인을 닮아간다.
당신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주 사용하는 말처럼, 집도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당신 집으로 초대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집을 둘러보아라. 청결하게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지, 밝은지 어두운지, 미관을 해치는 것은 없는지, 화장실에서 상쾌하게 볼일을 볼 수 있는지, 아주 객관적인 방문객 입장에서 확인하고 직접 느껴보면 알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어디에, 무엇에 먼저 손을 대야 하는지 알게 된다.
직장인들은 밖에서의 피로를 집에서 푼다. 혹시나 집이 아니라 밖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점이 있다. 그건 집을 편안하게 만들지 못한 주인의 책임이다. 집은 최고의 안락한 장소이어야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분이 즐거워야 한다. 따뜻하고 아늑하다고 느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나 장식들도 답답하지 않아야 한다. 이 정도면 집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는 동안은 남의 집도 내 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 집이 아니고, 세 살고 있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고 살아서는 안 된다. 집안을 더럽게 놔둔다든가, 집 곳곳에 눈에 거슬리는 상처들을 그냥 뇌 두고 사용하면 그게 주인의 인격이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하던 발전이 없다.
내 집이건 남의 집이건 미관상 보이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은 곳이 썩고 뭉개지는 것도 모른다.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온다. 집에 대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못 들을지언정 “저 집은 너무 지저분하고 더러워. 물건들이 정리가 안 되어 정신이 없어.”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특히 이사 갈 때, 더러운 집을 넘겨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곳곳에 찌든 때에, 화장실은 냄새가 진동하고, 문은 떨어질 듯 말 듯, 그런 상태로 다음 주인에게 전해준다. 절대 그러지 말자. 그건 진짜 예의가 아니다.본인이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해보면 두 번 말하지 않아도 이해가 간다. “누가 살았는지 집 깨끗하게 사용했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어디를 가서든지 잘 사는 사람이다.
집에 대해서도 예의를 다하면 마음이 즐겁고, 정신이 맑고 고요해진다. 그럴 때, 내가 선택하지 않은 행운이 틈새로 찾아오곤 한다. 인생은 이것이 묘미가 있다.
그래서 인생을 살만하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행복이 나의 가슴을 두드린다면 그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집에 대한 예의가 당신 마음을 움직인 것이고, 그 마음으로 인해서, 하는 일이 즐겁고 유쾌했다. 그 이유로 필연이든 우연이든 좋은 일이 찾아온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행복과 불행은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만 명심하면 우리는 집과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