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의 본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드먼드 마운틴 Jul 29. 2018

채워진 행복이 아닌, 비워진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

적게 소유하더라도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가지면 공허하지 않다

집안에 있는 불필요하거나 오래된 물건은 내보내지 않고, 계속 새로운 물건을 들여오는 사람이 있다. 


물건을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이다.


물건 버리기가 아쉽거나 아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덜어낼수록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특별한가? 그렇지 않다. 

물건을 버리는 행복을 아는 사람일 뿐이다.

하나 들어오면 한 개 또는 두 개를 버려서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긴다. 쓰레기장이 될 것인지, 쾌적한 공간이 될 것인지는 물건을 버리다 보면 알게 된다.  

                                 <강진 다산초당>


손님으로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깔끔하고 단순하게 느껴지는 집이 있고, 어수선하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집이 있다. 화려하고 비싼 물건에 고급스럽게 치장해 놓은 집도 있다.

이중, 삼중으로 화장한 얼굴보다 민낯이 훨씬 우아하고 보기 좋은 여성이 있듯이 집도 그런 집이 있다. 그렇게 주인의 생각과 삶의 방향에 따라 집안의 풍경이 달라진다.      


당신은 ‘간소하다’는 말의 의미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가?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데, ‘단순하게’라는 말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 낱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집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의미 있고 중요하다.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자칫 집에 대한 이해가 빗나갈 수가 있다. 일단 아래 내용을 읽어보자. ‘간소하다’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성인이 절구를 한번 만들어내자 천하에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낟알을 먹는 사람이 사라졌다. 신발을 한번 만들어내자 천하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지 않게 되었다. 또한 배와 수레를 한번 만들어내자 아무리 험준한 곳이라도 운반하여 유통시키지 못하는 물건이 없어졌다. 그와 같은 방법이 얼마나 간소하면서도 쉬운가!> 

   

마지막 문장에 간소하다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아, 이게 간소하다는 뜻이구나.”하고 금방 머릿속에서 이해가 될 것이다.

간소하다는 말은 단순하다는 말로도 사용되며, 효용성, 편리성, 신제품의 의미가 담겨 있다. 부족하다거나 뒤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참고로 위 글은 조선 정조시대 실학자, 박제가가 쓴 ‘자서(自序)’ 의 일부분이다.     

비어 있는 공간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 행복이 찾아왔단다. 생각할수록 재밌는 현상이다. 소유는 공허하고 비우기는 행복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가지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인가? 나쁘지 않다. 가지고 싶은 물건에 욕심이 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은 쉽사리 절제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고, 좋은 집을 보면 살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고, 멋진 옷을 보면 입고 싶고, 아름다운 곳을 보면 가고 싶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줄 모르고, 좋은 집에 살아도 좋은 줄 모르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좋은 줄 모르는 게 문제다.    

 

사람에 따라서 버리기 힘든 물건들이 있다. 


가지고 있고 싶고, 그렇게 쌓여가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처음부터 무조건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서는 곤란하다. 당장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하루아침에 다 버릴 수는 없다. 그런 생각과 행동은 오히려 간소한 삶을 방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금방 지친다.     


버리기 힘든 물건들은 시간을 가지고 정리하는 게 맞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자기가 구입한 물건들을 한 번에 버리기가 쉽지 않다. 갱년기 아줌마 다섯 명 데리고 제주도 가는 일보다 물건 버리는 게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그릇이나 도구들은 정리를 쉽게 했는데, 옷은 하나라도 버리기가 아까운 사람이 있다. 그러면 당분간 옷은 그대로 두자. 집의 본질을 계속 고민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안 입는 옷도 행복한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집의 본질에 다가가는 삶은 불필요한 물건, 나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삶이다. 

그것이 집과 나를 동시에 편안케 하는 삶이다.


작은 것, 적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알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면 된다. 그렇다고 꼭 필요한 물건에 대한 욕심마저 버리는 게 아니다. 나에게 책이 소중하다면 책을 정리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간소한 삶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만족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살면 된다.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비울 수 있는 만큼 천천히 비워가면서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찾아가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 비우는 기쁨을 알고 거기서 채워지는 마음의 기쁨을 안다면 그것이 곧 행복한 삶이다. 알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행하기가 어렵듯이, 행하면서 조금씩 행복을 찾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의 태도는 물건의 소유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냐의 문제일 따름이다. 

새로 나온 물건이니까, 남이 샀으니까, 유행이니까 사는 소비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제 그런 욕망은 거절하자는 말이다. 사실상 내가 집안에 어떤 물건을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크게 관심 없다. 나의 문제인 것이다. 내 자신, 내 마음의 문제이다.     


적게 소유하더라도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가지면 공허하지 않다. 

최소한의 삶이 무엇이고 그 가치를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에 한해서 주어지는 축복이다. 이러한 삶이 간소한 삶이다. 이런 간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물건 자랑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다. 간소한 삶이 궁색하고 빈약한 삶인가?     

가끔 간소한 삶의 의미가 가난하다, 궁핍하다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오해를 법정스님이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법정스님은 간소한 삶을 무소유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말은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햇볕이라도 계속 쬐면 어떻게 되는가? 병에 걸리고 만다. 아무리 웃음이 좋다고 계속 웃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다른 사람 눈에 실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늘 듣는 말이지만, 과도함은 모자람만 못하다.  


물건 버리는 걸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를 버려도 상당히 힘들어한다. 미련이 남는다. 내가 그것을 얼마에 샀는데 하면서 말이다.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그 사람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의미다. 이런 사람은 실천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니면 영영 못할 수도 있다.     


불필요한 물건 버리는 것을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그건 낭비가 아니다. 더 이상 낭비하지 않기 위한 삶의 지혜다. 그 실천에 참다운 행복이 존재한다. 언젠가 사용하겠지 하면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이러한 불필요한 물건에 미련을 가지지 말자. 꼭 필요한 물건, 쓸 물건만 남기자.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이 그것을 원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도저히 나는 그렇게는 못 살아.’하면 간소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2년 동안 집의 가치를 고민하고 물건 버리기를 실천했던 사람이 “하도 버려서 이제는 버릴 게 없어요.”라고 하기에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버리고 나니, 버리기 아쉬웠던 물건이 하나라도 있었나요?”

“아니오. 없었어요. 아, 예쁜 옷만 잠깐 생각이 나더라고요.” 


간소한 삶은 버리기 중독이 아니다. 단지, 중독이 되면 버리기에만 익숙해진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면 삶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하루에 한 번 집안을 둘러보며 없어져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탐색해 보자. 그렇게 버리다 보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건 해본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이다.


내가 사회생활하면서 간직해 온 명함이 600장이 넘었다. 간소한 삶을 실천하면서 웬만한 건 다 버렸는데도, 명함은 한동안 버리지 못했다. 그게 뭐라고. 사실 1년, 2년 가도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명함들인데도 대단한 보물처럼 여겼다. 그것이 나의 사회생활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도 남기지 않고 미련 없이 전부 버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시원하던지, 묵은 때가 한 덩어리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물건에 연연하다 보면 물건의 노예가 될 뿐이다. 간직할 만큼 간직하고, 사용할 만큼 충분히 사용했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고맙게 버리자. 그런 물건은 간직해 두면 짐만 되고, 공간만 차지할 뿐이다.

사람은 질리지만 꽃은 질리지 않는다. 꽃과 같은 물건만 놔두자. 그리고 소유할 물건이 있으면 꼼꼼히 따져보고, 몇 번 숙고하고, 비싸도 내가 진짜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면 된다.     


그렇게 간소한 삶은 집안의 빈 여백 속에서 쓸모를 보게 해 준다. 공간을 새롭게 보이는 눈이 뜨여지고 그 새로움은 또 다른 질서의 기쁨을 누리게 해 준다.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건이 없어도 물건이 꽉 차 있는 집을 상상해 보자. 공간에 아무것도 없고 비워져 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이게 상상이 가는가? 그런 집을 만들어보자. 그릇도 냄비도 냉장고도 텅 비어있어야 쓸모가 있는 법이다. 비어 있음에서 시작도 있고, 끝도 있다. 여백은 비움과 채워짐이 동시에 존재하는 행복이다. 그런 집이 행복이 넘쳐나는 집이다.  

내 집이 아니어도, 작은 평수의 집이어도 마음이 풍족한 사람들이 있다. 무소유와 비소유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버리고 처분하는데 아쉬워하지 않고, 치장하고 꾸미는데 주력하지 않고, 불필요한 소유를 과감히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삶을 바꾸어 최소주의로 최대 효과를 실현하는 사람, 삶의 본질에 밝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운은 집의 틈새로 찾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