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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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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먼드 마운틴 Aug 05. 2018

집에 사람이 있고, 자연이 있고, 여행이 있다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지, 집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1. 집은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 집은 사람 냄새를 먹고 산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으면 집의 기운이 빠져나간다.


2. 집에서 자연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그것이 꽃이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가구가 되었든, 자연을 느낄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3. 집에 있으면 기분이 즐거워야 한다. 이야기가 있고,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건강한 음식이 있고, 휴식이 있어야 한다.    

하나, 집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이 서로 닮아간다. 집은 다름을 같게 변화시켜주는 묘한 특징이 있다. 우리는 가끔 닮은 부부를 보며 이렇게 얘기한다.

“어쩌면 두 분은 남매처럼 그렇게 쏙 빼닮으셨어요.” 그런 말을 들은 부부도 원래는 다른 얼굴이었는데 오래 함께 살다 보니 닮았다고 믿는다.  


‘한 집에서 부부가 오래 살면 닮아 간다.’

이 말은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집이 사람을 바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집은 그런 공간이다.     


둘, 집에는 자연이 있다. 

사람들은 자연을 집으로 가져오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집에 정원을 가꾸거나 베란다에서 화초를 키운다.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꽃을 집에 들인다. 집에서 mini(작은) 자연을 즐긴다.     


셋, 집에는 여행이 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집을 떠나고 싶은 것일까? 아니다. 재충전이다. 집에서 더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또 다른 장소로 잠시 휴식을 떠났다가 돌아온다. 

며칠 여행 갔다가 오면 집이 왜 이렇게 좋은지, ‘그래도 집이 가장 좋고 편하다.’고 느끼곤 한다. 집이 다시 보인다.    

   

여기 세 사람이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루이스 칸, 승효상은 공간을 행복으로 다자인 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사람들이 만든 공간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사람, 자연, 여행을 떠올릴 수 있다. 

사람, 자연, 여행은 한 길이다. 집이 그러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집은 자연처럼 질리지 않고, 여행을 떠나듯 신나고 기분 좋은 곳이어야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워낙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소로는 가진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삶, 물질의 노예가 되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만든 공간에서 자연주의적인 삶을 산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1845년에 월든 호숫가 숲 속에 들어갔다. 거기서 네 평 남짓 통나무집을 한 채 지었다.

그 집에서 2년 2개월 동안 밭을 일구면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했다. 단순한 삶, 소박한 삶 속에서 참다운 삶을 찾았다.


루이스 칸은 20세기 위대한 건축가로 불린다. 

그는 명성에 비해 건축가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린 때는 오십이 훌쩍 넘어서였다.

칸은 1951년에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로 한 달 동안 여행을 가는데, 이 여행이 그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건물을 만든다는 것은 인생을 만든다는 의미라며, 건물을 통해 얻고 싶은 사람의 마음, 사람이 주인인 건물에 열정을 쏟았다.

칸은 건물의 본질에 대해 늘 고민했고, 돈을 쫓아 건물을 만들지 않아 파산위기까지 갔었다.    

 

승효상은 서울시 총괄건축가 1호,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설계자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건축에 있어서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게 더 중요하고, 비움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또한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의 미학이라는 빈자의 미학을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집을 위해 살고, 집 때문에 주변을 되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집이 성공과 실패, 이웃을 나누는 경계가 되어버렸어요.”라며 아쉬워한다.

승효상은 삶의 실체를 그려야 하는 건축가에게 가장 유효한 건축 공부방법이 바로 여행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자연처럼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편안한 공간을 꿈꾼다. 


확신하건대 자연이란 공간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자연 속으로 여행을 가고, 아플 때도 자연에서 쉬라고 한다. 

잠들 때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떠올리고 잠들어 보자. 내가 전에 가보았던 풍경을 떠올린다. 파란 하늘도 좋다. 파도도 좋다. 꽃도 좋다.

이때 떠오르는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해보자. 나무를 떠 올일 때는 ‘나무처럼 곧게 사는 거야.’, 바다를 떠 올일 때는 ‘바다처럼 깊어지는 거야,’ 등으로 말이다. 그러면 잠이 달라진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 이전에 자연 지향적 동물이다. 사람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긴장이 완화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연에 둘러싸인 집을 부러워하고 동경한다.     

집은 자연처럼 편안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집이어서는 안 된다.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집은 여행처럼 즐겁고 유쾌한 장소이어야 한다. 잠만 자는 집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도, 옷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 음식이나 먹어서 배만 부르게 한다면 동물과 무엇이 다를까.

또한 단지 몸을 가리기 위해서만 옷을 입는다면 얼마나 보기 흉할 것인가.      


무엇보다 집은 가족의 공간이다. 


집은 아침이 되면 가족을 내보내고 저녁이 오면 받아들인다. 그렇게 다시 아침이 올 때까지 따뜻하게 가족을 품어준다. 얼마나 밖에서 고생했느냐며 안식을 하게 해 준다.     

집은 가족 구성원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각 방을 들여다보면 그 방을 사용하는 사람의 모습도 알 수 있다.

집의 물건들은 주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까지 알려준다. 벽면에 액자 하나 걸려있지 않아도 주인의 철학을 알 수 있는 집이 있고, 튀는 액자가 집안 분위기를 어울리지 않게 하는 집도 있다.

집에 대한 태도를 보면 어떤 주인은 채우면서 희열을 느끼고, 어떤 주인은 비워내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지, 집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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