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온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방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일도 오늘과 같은 물건을 가방에 넣고 출근을 하겠지만. 혹시나 길에서 받은 전단지나 잊고 있는 물건들이 있을 수 있기에 오늘도 가방을 정리합니다.
오잉?!?!
그런데 낯설지 않은 물건이 가방에서 나오더군요. 바로 핸드폰 고리였습니다. 작고 귀여운. 어릴 땐 참 주렁주렁 많이도 달고 다녔었는데. 그러나 추억에 잠겨있을 새도 없이 준다고 받아온 것이 조금씩 후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잠시 들른 언니네서 받아 온 건데요. 그 자리에서 바로 떠주는데 안 받아올 수가 없더라고요. 이런 물건들을 집안으로 들이는 순간 최고의 골칫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수 떠준 핸드폰고리를 사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며 핸드폰 고리의 쓸모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보니 비슷하게 만난 물건들이 있더라고요. 그건 바로 TV위에 있는 인형들입니다. 처음엔 토끼인형 다음엔 강아지 인형. 그렇게 하나씩 늘어난 게 벌써 4개가 되었지만 여전히 소유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집안에 있을 이유, 쓸모를 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집안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힐링되는 물건들. 인형들이 저에게는 그런 물건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그런 물건요. 그렇게 저의 힐링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이랍니다.
미니멀 라이프 한다고 하지 않았어?
물건을 비워도 모자랄 판에 무슨 인형이야?
사실 인형들에게 그런 힐링을 느끼지 못했다면 벌써 비워냈을 겁니다. 굳이 쓸모가 있는 물건을 비울 필요를 못 느꼈을 뿐이고. 나중에라도 이보다 더 나은 힐링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그동안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며 비울 각오도 되어있어요.
인형들을 들이면서 사람들이 왜 작고 귀여운 소품들을 구입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거 같아요. 저도 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언제 가는 이런 마음도 변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됩니다만. 그래서 물건을 들일 때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한번 쓸모를 정해주고 들인 물건이니 계속해서 함께 하길 바랄 뿐입니다. 제 삶에 인형 4개 정도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같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언니에게 받은 핸드폰 고리를 핸드폰 대신 가방 손잡이에 걸었습니다. 어때요? 괜찮나요? 이것이 제가 핸드폰 고리에 준 쓸모입니다. 물건을 버리지 않고 쓸 수 있어 좋고요. 그 물건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을 비우지 않아서 더 좋습니다.
아무리 귀엽고 예쁜 소품이라도 무조건 들이는 것은 정말 원하지 않아요. 그렇게 물건을 늘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나 어느 날 마음이 힘들거나 아파 버티기가 버거울 때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소품 하나 정도는 어떤가요? 누군가의 마음을 한가득 담은 물건이라면 또 어떨까요?
물건을 준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물건을 들이긴 했지만 쓰임이 없어 다시 비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했던 물건에게 쓸모 정하기를 함으로써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물건의 쓸모를 정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 결정이 쓸모 있는 물건이 되거나 쓰레기가 되거나를 결정지으니까요.
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집안의 물건들에게 안부를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