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 지나면 11월입니다. 그런 11월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새로운 다이어리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11월이 되면 월례 행사처럼 다음 해에 쓸 다이어리를 구입하거든요. 혹여나 품절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까지 하면서 말이에요.
새 다이어리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좋은 일입니다. 물론 이런 감정은 다이어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물건에서도 종종 느끼곤 합니다만. 기록을 좋아하게 돼버린 저로서는 다이어리만 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올해는 구입이 살짝 망설여집니다. 왜냐고요? 그건 바로 미니멀라이프 때문이에요. 사실 그동안 미니멀한 삶을 살겠다며 많은 물건들을 비워왔잖아요. 물론 그로 인해 단순하고 홀가분한 삶을 살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시 물건을 들이려고 한다는 게 맞는 건가 싶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가지고 있는 다이어리가 꽤 많다는 것 또한 구입을 망설이게 만들더라고요. 하긴 제가 봐도 많았으니까요. 그럼에도 한참 물건을 비울 때 버리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분의 다이어리 규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물건들로 인해 답답하고 벅찬 삶을 살던 중 미니멀라이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이 물건 버리기였고요. 그러나 저도 사람인지라 보기만 해도 좋은 물건들은 쉽사리 비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것이 저에게는 다이어리였고요.
하는 수 없이 최소한의 규칙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남은 다어이리는 수납장 한 칸을 넘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하였습니다. 다행히 가지고 있는 다이어리를 모두 수납할 수 있었고요. 더 이상은 구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해가 다가오니 왜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한 걸까요? 이를 어쩌면 좋을지.
그러나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지금. 스스로가 참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물건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졌다는 것을요. 그렇게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작정 구입이 아니라 갖고 있는 다이어리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고...
많더라고요. 다이어리가 참으로.
거기에 같은 다이어리가 꽤 된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쓰고 구입하면 될 걸 왜 이렇게 구입해 놓았는지. 아무리 품절이 많은 다이어리라 해도 말이죠.
핑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써야 할 때 만나는 품절은 살짝 좌절감 비스무리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렇게 하나하나씩 기분 좋게 구입해 놓은 거 같습니다. 물론 죽기 전에는 다 쓰고 죽을 겁니다. 그러나 물건이란 게 그런 건가 봐요. 있어도 있어도 또 갖고 싶은 그런.
그래도 들이고 싶은 물건 덕분에 갖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얼마 큼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요. 수납했던 곳에 쌓여있는 먼지 제거까지. 그리고 다시 해보는 물건의 정리. 이 정도면 저 다이어리 구입해도 되지 않을까요? 농담요, 농담.
만약 소유하고 있는 다이어리가 없었다면 바로 구입했을지도 모릅니다. 물건도 마찬가지예요. 사고 싶거나 들이고 싶은 물건이 집에 있는 물건이라면 구입하지 않았을 겁니다. 집안으로 들이는 일도 없을 테고요. 그러나 정말 들이고 싶은 물건이라면 저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첫째. 다이어리 하나를 구입하고 남아있는 다이어리 중 2개를 중고마켓에 판매할 거예요.
둘째. 좋아하는 펜 하나를 구입하고 잘 안 쓰는 펜 2개를 무료 나눔 하겠습니다.
셋째. 책 한 권을 구입하고 저에게 맞지 않는 느낌의 책 2권을 비우겠습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구입해도 되지 않을까요?
미니멀라이프를 살면서 많은 물건을 비워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비운 공간에 다시 물건을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빈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살다 보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특히 가족들과 함께하는 삶에서는요. 그래도 나름 물건을 들이고 싶은 마음을 잘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혹시나 눈 깜짝할 새 들어오는 물건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우리 현명하게 채우는 건 어떨까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니멀리스트 다됐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니 미니멀라이프를 좋아할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