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가 아니고 일이 아트인 그들
업무를 배정받고 난 후 퀘스트 깨듯 하나씩 다해나가면 나에게는 시간이 생긴다. 수많은 자료들에 기웃거릴 수 있는 시간. 자료조사라는 명목으로 하나 둘 클릭하는 링크에는 언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다양한 정보들이 떠다닌다. 그중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줍줍하는 그런 시간.
+우리는 이걸 ‘(합법적) 월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실제로 인사이트를 얻기도 하니까?
퇴근 후 읽었던 베테랑의 몸. 사실 월루 시간 인터넷 세상에서 발견 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인데 검색하니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없었다. 아직 연차도 월차도 없는 나.. 평일 9 to 6에는 밖을 나갈 수 없는 묶인 몸이니.. 4시 퇴근하는 날의 언니를 꼬셨다. 무려 도서관 대출 카드를 언니 직장 우편함에 놓고 오는 007 작전을 써가면서, 무려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모셔오는 상호대차 신청까지 해서 말이다.
부쩍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직업, 일의 영속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시기라 그럴까? <베테랑의 몸> 책을 열면 조산사, 마필 관리사, 조리사, 로프공, 세신사 등 평소에 만나볼 일 없는 이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다큐3일, 인간극장, 체험 삶의 현장을 영상을 글로 옮겨놓은 형태다. 그들은 베테랑에 대한 각기 다른 정의를 내린다. 그냥 계속 했더니 베테랑이 되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냥 하는 걸 오랜 기간 지속해서 했다는 게 진~짜 대단한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린 마음에 뭐 그게 대단한건가 싶었는데 이제는 존경 그 자체다. 그리고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건지 주변에 정년을 맞이한 가족이 두 명이나 있다. 적어도 2~30년 이상 한 곳에서 밥벌이를 하시고 떠나갈 때가 되신 것이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예전에 할아버지는 정년 이후에도 괜히 넥타이를 만져보고, 와이셔츠를 입어보곤 하셨다는데.. 그걸 지켜보는 할머니 마음도 참 시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이라는 건 한 사람의 일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베테랑의 삶>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거나 혹은 다른 일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하는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면 한번 들여다보면 좋을 책이다. 궁금한 직업이 있었다면 한 챕터만 읽어봐도 좋을 듯!
노동이라는 게 이렇다. 일터에만 머물질 않는다. 작업복에, 머리카락에, 살갗에 흔적을 묻혀 따라온다. 마음에도 묻어온다. 마필관리사들은 수년간 쓰다듬고 만지고 같이 달리던 경주마들의 털과 냄새, 그리고 무언가를 묻혀왔겠지.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가족에게, 퇴근길 만나는 친구에게 그 흔적을 묻힌다. 혼자 하는 노동도 없지만, 혼자라 할지라도 어딘가 닿고 묻히고 긁히고 그렇게 연결을 증명한다.
-「베테랑의 몸」, 희정, 한겨례출판사
그리고 나는 ‘일=돈벌이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일을 하면서 작은 성취감 또한 함께 동반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단순 업무할 때보다 자기 색깔이 조금이라도 묻어나는 기획 과정이 섞인 일을 하고 나면 스스로의 성장이 느껴지니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일터에서의 기운이 내 몸에도 묻어오니까. 오늘은 어떤 말과 표정, 어떤 감정이 나에게 묻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