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3개월차 강아지의 하우스키퍼 입사기
강아지를 기르겠단 결심을 내가 한 건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 타 지역 대학에 입학해서 유학길을 올라왔을 때, 미리 인근 지역으로 발령받아 올라온 아빠와 같은 지역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언니가 살던 집에 얹혀 살게 된 것이다.
고향에 남아있는, 동물은 사람빼고 다 질색하는 엄마의 눈을 피해 언니는 내가 그 집에 합류하고나서 얼마 안 된 어느 시점부터 내게 같이 돈모아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자고 꾸준히 세뇌를 시켰다. 그리고 언니가 갑작스레 결정된 교환학생을 갔다 오고 나서, 나도 사귀던 남자친구를 군에 보내고 난 후 두 사람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언니는 반려동물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의 서류검사는 등록된 인재풀에서 찾는 형식이었다. 집 근처의 동물병원부터 온라인에서 유명한 입양소, 심지어 언니는 커뮤니티에 가입해 가정분양까지 스크리닝을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언니가 찾아만 보다가 제 풀에 지쳐 그만둘 거라 생각했기에 맞장구만 대충 쳐줄 뿐이었다)
언니의 적극적인 노력에 못이겨 유명한 동물병원에 견종을 보러 실사를 갔을 때도, 무작정 정보의 늪을 탐험할 때도 두 여자의 의견차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의 견종 선택 우선순위를 2-3가지씩만 골라 이에 부합하는 견종으로 분양 경로를 찾아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하여 정해진 스크리닝 조건은 언니의 의견을 수렴해
1. 푸들/말티즈/시츄/치와와처럼 비교적 대중적인 종이 아닌 강아지
2. 한 마리만 골라 키우는 만큼 귀족출신 견종
내 의견을 수렴해
3. 다리 비율이 이상하게 짧지 않은 견종
그리고 둘 다 청소를 좋아하는 성향은 아니었기에
4. 털이 덜 빠지는 견종
이렇게 좁혀졌다.
그리고 언니는 장차 하게 될 유수 컨설팅펌 RA 인턴십 경험을 살려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견종을 찾아냈고, 비숑 프리제였다.
그 후 분양가 조건이 우리의 WTP를 만족시키는 몇 안되는 집을 추려냈고, 때마침 운 좋게 우리는 WTP에 부합하는 가정분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암수 금슬이 좋아 벌써 두번째 출산인데다, 워낙 애들이 x꼬발랄해서 집에 여러 마리 있는 게 정신이 없으니 빨리 데려갈 수만 있다면 제시가격보다 낮아도 상관없다고 했던 분양글 글쓴이. 언니와 나는 그렇게 거의 지역의 끝에서 끝인 격인 우리 집에서 분양집을 버선발로 달려갔고, 여기서 우리 강아지를 만난다.
강아지 4마리가 함께 사는 집이었던 그 집은 엄청나게 정신이 없었고, 더 활발한 아빠, 엄마 사이에서도 기 안 죽고 팔짝팔짝 뛰어다니던 산이에 한 눈에 반했다.
이름의 근원은 집안에 사람 외의 동물을 들여놓길 결사반대하던 부모님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가족의 추억이 담긴 호칭을 고민했고, 우리 가족이 가장 오래 산 동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향후 이 전략은 꽤나 유효했다.
숙식 해결 (특별식 제공), 품위유지, 스파 관리 무료 제공, 의복 지원, 교육 지원을 전제로 무급 종신고용직에 고용된 산이의 미래는?! 두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