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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미니민 Sep 17. 2016

계획 없는 도움닫기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나자빠질 뿐이다.

너는 취업했니?


꽤나 오랜기간동안 보지 못했던 당숙 아저씨의 안부인사였다.

다행히, 그래도 (쩌리 직군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름 있는 회사의 이름을 댈 수 있었고 모두가 '명존쎄각 (명치를 존X 쎄게 때리고 싶게 만드는 각)'이라 말하는 친척들의 걱정 어린 오지랖을 피할 수 있었다.

부모님도 흐뭇해했다.


만약, 내가 직장이 없었더라면 이런 말 한마디를 고운 마음먹고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데 굳이 치부를 들쑤셔서 명절에 대한 기억을 더 나쁘게 각인시키는 친척 어르신, 별로 달갑지 않다. (아직 창창한 20대 중반인데, 결혼 얘기를 꺼내시는 친척 어르신 입을 손으로 막고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는지, 명절 풍속도 참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취준생, 공시생들은 친척들의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를 피하려고 어느 학원이 마련한 쉼터로 간다고 하고, 추석 특강을 들으며 민족 대명절을 혼자 보낸다고 한다. 이 외에도 혼자 명절을 지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하고, 남녀간의 명절 분쟁은 더 극한으로 치닫는 느낌이었다.


이런 변화는 언젠간 다루게 되겠지만, 세대 간에 내 나이 때 해온 경험이 너무나도 달라서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 나 또한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주로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가, (그래서 선생님, 교수님들과 소통이 어려웠던 것 같다) 나이의 스펙트럼이 넓은 직장에 와서 보니 적응이 참 어려웠다. 내 또래 친구들은 '할 말 잘 했네', '참는 사람이 바보지' 라고 할 일들을 팀장급들이 봤을 때는 '쟤는 왜 이렇게 버릇없냐', '요즘 애들은 왜 이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나 오래된 조직인데다가 선후배 위계질서가 중시되는 회사라서 더. 난 그 조직에서 '모난 돌'이 되어야 했고, 그 잘나신 선배들은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하는지 납득을 시켜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이게 정말 맞나', '내가 정말 뭘 배우고 있긴 한걸까'란 고민을 수도 없이 했던 1년이었다.


추석 전에 봤던 'SBS 스페셜 - 은밀하게 과감하게~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다루고 있었다. 관련 기사만 해도 수백 건이 넘는 기사가 재생산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https://youtu.be/oazitXV4fBo

우리 삶의 이야기

여기에 나오는 케이스들은 글쎄, 많게는 3년, 적게는 몇 달을 다니던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나는 내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을 이 회사를 위해 꽤 쓸모있는 부품으로 소모되고 싶지 않았어요' 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설득력 있고 가슴 속에 뭐라 표현 못하고 담아둔 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준, 멋진 말이다.


그렇지만, 퇴사 그 후의 삶은? 

다시 또 다른 회사를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스타트업 창업? 그것도 아니라면 다시 또 공부?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퇴사가 현재의 선택에 대한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퇴사도 물론 어렵고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하지만, 정말 마음 깊은 곳에 태엽 감듯이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서, 꼴뵈기 싫은 사람을 매일 안 봐도 돼서 라는 이유가 퇴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낸 용기가 아닌 현실 도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퇴사를 준비한다면, 정말 양심적으로 생각했을 때 퇴사하고 더 준비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근거가 어떤 것인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에는 마땅한 근거 없이 그냥 조직생활에 지쳐서 조금 쉬다가 다른 데를 찾아볼 생각으로 퇴사를 결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퇴사를 하지 않고도 다른 회사를 찾아보는 작업은 본인이 시간과 노력을 조금만 투자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굳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스타트업 창업 또한 마찬가지다. 

중앙일보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기사가 있었는데,

http://news.joins.com/article/20581099

스타트업 창업주 모두 멀끔한 대기업에 재직 하다가 SBS스페셜에서 인터뷰한 퇴사자들이 지목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본인의 명함이 달라지면서 겪게 될 신용등급 하락, 문전박대 등에 대해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모두가 하나같이 퇴사를 위한 퇴사가 아닌, 본인 삶에 대한 주체성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절실함을 담아 스타트업을 창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름달과 대화한 결과,

그리고 기사 두 가지를 사례로 들고 와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절실할 자신이 없다면, 나조차 납득시킬 이유가 없다면, 어떻게든 버텨라'다. 직장 내의 삶도 힘들지만, 직장 밖의 삶은 더 힘들 것이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본인이 어디의 소속도 아닌 것은 결국 본인에 대해 온전히 본인이 책임을 다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본인의 짐은 생각보다 무거울 것이다. 그리고 그걸 견뎌낼 만큼 나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평생 짊어지고 가기 정말 무겁구나, 나레기 (양경수 작가의 일러스트 인용)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범인(凡人)이다.

한 때는 자신이 정말 큰 그릇인 줄 알았던, risk averse하고, 적당히 게으르고, 현실과 타협할 줄 아는.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차선의) 선택은 버텨서, 다른 좋은 기회를 잡을 타이밍을 찾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 나 편하자고 나란 짐을 잠시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짊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한가위는 왜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느낌이 달라지는 것일까.

작년 추석 때는 어색한 친척들과 어색한 공기로 가득 찬 친가집과 그보다는 덜하지만 어색하긴 마찬가지인 외갓집이 갑갑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시댁가야 해서 그런지,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플까' 라며 멋쩍게 웃으며 투정부리는 엄마 때문인지 올해는 부쩍 부엌에서 고생하시는 큰어머니와 엄마, 묵묵히 먼 거리들을 운전하느라 지친 아빠가 보인다. 그리고 어느 새 나이를 한참이나 드신 것 같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커가는 만큼 주변의 사람들도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데, 그들도 변해가는 나를 보면서 얼마나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실감할까. 이젠 정말 '어른'으로서, 그리고 '범인(凡人)'으로서 나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질 때가 온 것 같다.


tvN '어쩌다 어른' 김창옥 교수 편을 보다가, 정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구절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 있는 구절이길 바라며 복기하고 글을 마무리 짓는다.

- 정말 힘들면 이겨내려 하지 말고, 버텨내세요. 이겨내려 하다가 더 큰 사고가 나요.

안간힘을 쓰면서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보다는, 조금씩만 힘든 순간을 버텨내다 보면 어느 새 힘들었던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지 않을까. 다음 주도 잘 버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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