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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미니민 Oct 19. 2016

본격 회사 욕 - 내 얼굴에 침 뱉기

이런 회사를 다녀서, 분노하지만 표출하지 못하는 소시민이라서 죄송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요새 정말 난리다.

주변 이대 출신 친구들은 학교의 부조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서 이대의 독단적인 소통방식을, 학생 하나에 대해 과도하게 주어진 특혜를 다룬 기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하나된 목소리에 부담을 느꼈는지, 아니면 더한 비리를 숨기기 위해서였는지 모르지만 한 목소리로 부르짖은 '총장 사퇴'가 드디어 오늘에서야 실현되었다.

이대생들이, 학교의 불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외쳤던 염원이 이루어졌는데 찝찝한 기분이 드는 하루였다.



그런데, 

회사의 꼰대가 한 말은 그 기분을 더 찝찝하고 화나게 만들었다.

내 나이보다 1년 더 회사에서 근무한 그 꼰대는 어디선가 최경희 총장이 사퇴했단 뉴스를 듣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모두가 들을 혼잣말을 했다.

결국 최경희 총장이 사퇴를 했네? 
역시 '요새 여자들'은 참 드세. 정말 드세다 드세.
요새 '여'대생들이 정~말 드센 거 같아.

마치 방에 있는 '드센 요새 여자애' 누구를 콕 집어 들으란듯이 하는 말 같았다. 

그러고는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본인 팀 20대 여직원에게 동의를 구하기 시작했다.

OO아, 정말 '요새 여자들'은 참 드세지?

나보다 몇 년을 더 근무한 여직원은 직속상사에게 적당히 에둘러서 '뭐라 답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일축했다.


마치 여대생이 너무 드세서, 죄 없는 총장을 사퇴시키는 이런 일을 일으킨 것 처럼 이대생들은 여느 때 처럼 또 다시 꼰대에게 '드센 여자들'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누가 들었으면 이대 전교생이 총장의 멱살을 잡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 줄 알만큼 '요새 여자애들 참으로 드세다'는 말을 감탄사처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드센 요새 여자'라 정말 소스합니다. 디오니죄송님


내가 다니는 회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쭉 난리다.

그 꼰대가 내 연차 정도 될 때 쯤, 20년도 더 된 때에 노래방에서 회사 여직원들도 있는데 셔츠 풀어헤치고 놀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는 세상에 살았고, 그 시절 성윤리 인식을 가지고 여지껏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렇게 놀면 쇠고랑 찰 수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기도 하고, 그걸 왜 성희롱/성폭력으로 엮어가는지 '요새 여자들'이 별난 걸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꼰대의 발언 하나에 아무도 반기 하나 들지 못하고, 반기를 드는 사람이 '드세'고, 별난 사람이 되는 조직이다. 심지어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이 잘못했음을 주변 사람도 인지하고 있지만, 이에 반발하고 따져묻는 하극상(?)이 더 잘못되었다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논리적으로 설명해줘도 그런 꼰대는 그 논리와 그 논리가 나온 전제에 대해 이해 못 하는 완전체이고, 조직원들이 그런 꼰대에게 너무나도 잘 감염되어있기 때문이다.)


난 그런데도 '정신승리'를 하며 소시민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드센 여대생'들이 부조리에 맞섰고,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이 요구했던 것이 받아들여졌다.

그가 생각하는 '드센'의 의미가 내가 짐작하기에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도 있는 부조리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진상 규명이나 소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요새 여자들 참 드세다'는 말만 반복해서 내가 듣기로는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에서도 '드센' 대학생들이 학교의 불통과 납득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행동을 막고자 맞서 싸우고 있다. 그 꼰대는 '여대생은 드세다'라는 프레임으로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바라봤지만, 사실 상 그가 표현한 '드센' 사람은 여대생이 아니라 대학생이었다. 성별을 막론하고 대학생들이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고 있으니까. (전체가 학교를 바로잡는 운동에 참석하는 건 아니더라도)

그렇다면, '드세지 않은' 사람들은 어떠한 부조리도 - 설령 그게 요즘 같은 시대에도 노래방에 남녀가 다 있는 데서 그 누구도 보고싶어하지 않는 그의 웃통을 보여주기 위해 옷을 벗어재끼는, 사소한 부조리 같은 것일지라도 - '그럴 수도 있지'라며 눈 감아줄 수 있는, 그와 같은 꼰대들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렇게 '드세다'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frame에 현혹되어 자칫 발끈 할 뻔한 나를 다독거리며 오늘도 정신승리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빈번함에도 내가 이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정신승리가 하나 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비전이 없다. 끽해야 3~5년? 운이 좋으면 정년까지 가늘고 길게 버틸 수야 있을 것이다. (임원을 할 만한 재목으로는 회사에서도 인정을 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세상이 바뀌더라도 그가 대표로 그 회사를 군림할 것이라 생각되지 않으니) 하지만 나에게는 앞으로 수십 년의 직장생활이 있다. 그리고 이 직장생활의 판도를 바꿀 비전이 있다. 

정신적으로는, 그리고 직장생활을 위해 남은 시간은 내가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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