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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미니민 Apr 23. 2017

젊은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난 그 누구에게도 나를 구경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깊이 공부할 생각도, 고민할 생각도 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요 며칠 새 20대 여자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프로불편러'로 만드는지 다시금 깨달아서 울컥하는 마음에 글을 적는다.


그냥 옷 속이 비치거나, 짧은 옷을 입고 다니면 나이를 막론하고 노골적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는 남성들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사회 통념을 받아들였다. 기분 나쁜 그 시선들을 보낸 사람들을 째려보는 걸로 나 또한 그 시선들을 수용하고 살았다. 최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짧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걸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고 다니는 걸로 치부했기 때문에. 그래서 기분 나쁜 시선들이나, 나아가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보여줄려고 입었으면서 왜 그러냐'는 식으로 가해자가 오히려 떳떳했었으니까.


주말 저녁에 택시를 타면 기사들은 내가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예쁜 옷을 입고 타면 '어디 좋은 데 가나봐요', 수수한 옷을 타면 '불금인데 옷갈아입고 클럽같이 그런 데 안 놀러가세요' 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은근한 농담을 던지면서 계속해서 불쾌함과 일상적인 대화의 사이를 줄타기 하듯 나와 대화하려는 택시기사에게 나는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폐쇠된 공간에서 내 행선지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은 상태에서 난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다. 어색한 웃음과 단답으로 대화 그만하고 싶다는 소극적인 의사표현만을 할 수 있었다.


어제는 궁 야간개장에 한복을 입고 갔다. 야간개장을 위해 단아한 한복을 차려입고 들뜬 마음으로 나왔다. 단장을 한 우리를보고 어떤 모르는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아가씨들 옷 예쁘게 입었네~'라며 나와 눈을 마주치고 하는 말을 들으며 기분이 확 상했다. 난 그런 말 들으려고 한복 입고 꾸미고 나온 게 아닌데. 하지만 어떻게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그 아저씨가 못 들을 정도로 나직이 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갔던 야간개장

여자를 꽃에 비유하며 '꺾는다'는 표현을 쓴 노래를 들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이 그리 성평등 의식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설령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입고 나온 옷이라 해도 나와 무방한 그 누군가에게 나를 평가받는 건 기분이 매우 나빴다.


잠깐 생각을 해 보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젊은 여자들은 항상 성희롱의 대상이었다. 여자가 지나가면 휘파람을 부른다는 외국부터, (실제로 일본에서 어떤 남자무리는 내가 지나갈 때 이상한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짧은 옷을 입었다고 모르는 아가씨의 위아래를 충분히 훑어보고 다짜고짜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는 아저씨가 만연한 한국까지. 젊은 여성은 이런 행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오직 본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회는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성폭력에 대해서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행동거지를 나무랐다. 젊은 여성들은 안 좋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 튀지 않게 행동하고, 다소곳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


그래서 제안한다. 최소한 길거리에 여자들이 예쁜 옷을 입고 돌아다닐 때, 본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조금 노출이 있는 옷을 볼 때, 제발 한 번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시선을 즐기기 위해 입고 나온 것이라 해도, 그 익명의 누군가에 본인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그리고 설령 그 누군가에 본인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불쾌감을 조장할 수 있는 눈빛이나 말 한마디가 걱정으로 느껴질 정도로 당사자와 친밀한 관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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