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입은 '나'만 생각하고 행동하기 1/3
직장 내 성추행을 이야기 할 때 떼놓고 말하기 힘든 것들이다.
직위의 고하를 이용하여 본인보다 아랫사람에게 본인의 권위를 내세운 성적인 행동을 강요받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하물며, 술기운에 빌어 일어난 '실수'라며 일어났던 일을 없었던 일인 양 덮어버리려고 하거나 축소시키려 하는 '꼰대'들이 있는 한, 직장 내 성추행은 제2의, 제3의 죄없는 피해자들만 계속해서 만들어낼 뿐이다.
술기운 없이도 80년대 군부독재시절에 심취해 사무실에서 슬쩍슬쩍 성추행을 행하는 상사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술기운에 빌어 용기를 갖게 된 꼰대들이 술자리에서 술을 먹고 한 실수인 양 성추행을 자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 두 가지 경우 모두 잘못되었으며, 엄연한 범죄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고, 은밀하고 말로 꺼내기 주저스러운 주제이기 때문에 더욱더 차분하게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
익명이라 당당히 말하지만 (물론 오프라인 상에서도 내가 잘못한 게 없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얘기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직장 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당한, 글로 옮기기에도 힘든 성폭행에 비하면 정말 경미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아무리 경미한 성추행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의 가치를 낮춰 보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정말로 불쾌하다. 그리고 그 상황이 일어난 데 대한 원인을 차근차근 곱씹어볼 때, (1) 내가 본인보다 연령이나 연차가 높았다거나 (2) 성추행 가해자와 다른 성별이 아니었더라면 (동성 간의 성추행을 배제하는 발언은 아니다. 내가 겪은 상황에 국한되는 가정이다.)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일로 인해 주말엔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한, 끔찍한 경험이었다. 물론 그 후의 가해자와 같은 성별의 부서장이 성추행 가해자를 감싸돌고, 오히려 나를 제2의 가해자로 몰고 가서 더 끔찍해지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이번 글과, 이어지는 2편의 글을 통해 직장 내 성추행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겪어본 사람으로서 나와 같은 마음고생을 겪을 사람이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행동지침 몇 가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이번 편의 글은 1) 직장 내 성추행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음 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성추행이 발생했을 때 2) 그 자리에서, 3) 사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내 경험에 빗대 각자 한 편씩 적어보려 한다.
당연한 얘기들만 적어놔서 '에이, 뭐 이런 걸 다' 라고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세넓병 (세상은 넓고 병X은 많다)' 이라고 당연한 얘기들을 마음 속에 꼭꼭 새겨 놓아야 똥을 피해갈 수 있다.
직장 내 성추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1) 직장 내 성추행을 할 것 같은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가려내고, (2) 그들에게 여지를 안 주고, 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3) 꺼림칙한 상대는 철벽을 세워 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에 대해 자세히 다뤄보기로 한다.
(1) 직장 내 성추행을 할 것 같은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가려내기
무작정 직장의 모든 사람들을 잠재성추행범으로 몰아가라는 소리가 아니다. 예비성추행범들은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고, 어쩌면 본인들의 '똘끼(?)'를 많이 노출시킨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갑자기 미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예방할 수 있는 건 예방하는 차원에서 특히 술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피하는 게 좋다. (겪고 들은 얘기만 종합해서 적은 후보군들이라 빠진 것 같은 유형이 있으면, 코멘트를 보고 지속적으로 추가해가겠음)
- 다른 사람들에겐 무심한데, '나'에게 유독 호의를 표시하는 사람
딸(아들) 같아서, 같은 고향이라서,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유독 본인에게만 호의를 베풀면 세상이 각박하니
의심부터 하는 게 좋다. 세상의 모든 호의 중에 댓가를 바라지 않는, 공짜는 없다.
- 야한 농담을 즐겨하는 사람
괜히 분위기 무안해서 웃어주다가 본인에게 여지를 남긴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 스킨십이 잦은 사람
술자리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이상하게 불쾌한데, 뭐라 말하기 애매한 스킨십을 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경계. 갈수록 대범해진다.
- 권위적인 사람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본인이 찍어눌르면 뭐든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본인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을 성추행하는 경우가 있다고들 한다.
- 소문이 안 좋은 사람
'남자(여자)를 밝힌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은 조심. 모든 이성이 다 본인에게 작업 대상인 경우가
많다.
- 눈빛이 음흉해보이는 사람
다수의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한다면, 본인 촉을 믿을 것
(2) 예비 성추행범(?)들에게 여지 안 주고, 피하는 법
간혹 직장에서 들려주는 성범죄 예방교육에서 정말 원론에 집중하는 강사들은 상사들에게 권위로 찍어누르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아랫사람들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는 상사에게 확실하게 본인의 의사표현을 하라고 한다. 나는 개소리라 생각한다.
성추행 가해자가 본인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경우거나, 사수여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고 일적으로 배워야 하는 '을'의 입장에 있는 피해자가 과연 본인의 의사표시를 단호하고 확실하게 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은밀하고 위대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통 (조직 내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내하고) 나는 이렇게 대처하는 편이다.
- 야한 농담을 할 때는, 웃으면서 면박 주기
같은 자리에 배석해있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동성의 직장동료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건 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이런 식으로 웃으면서 슬쩍 무안한 상황을 만들면 듣기 싫은 농담의 빈도수가 줄어든다.
만약 참석한 자리에 혼자 다른 성별일 경우에는, 야한 농담이 나온 자리에서 그 자리에 배석한 이성 중 가장
어린 이성에게 '이거 몇 백 만원짜리 발언일까요? 호호호' 이런 식으로 슬쩍 면박을 주면 본인 앞에서 말을
조심하는 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가진 자존심에 스크래치 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되바라지게' 받아친
후에는 면박을 준 상대에게 한동안 깍듯하게 행동해야 권위로 찍어누르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생활 참 힘들다..)
- 자꾸 이상한 분위기로 몰아갈 때는, 매의 눈으로 자리 피할 명분 찾아내 재빠르게 탈출할 것
상대가 자꾸 등을 툭툭 치면서 손이 더 밑으로 내려가려 한다든가, '딸 (아들) 같아서 그래', '따로 얘기 좀
하자 (맨정신이면 진짜 할 얘기가 있어서일수도 있겠지만, 술자리에서는 회사 동료 이성과 단둘이 남는
경우는, 둘 다 사심이 있을 때만 하기로..)' 할 때는 잽싸게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조짐이 보일 때,
연락을 빨리 받는 상대에게 전화를 요청한다든가, 배석한 동성의 동료에게 갑작스레 급한 할 말이 생각난 척
자리를 옮기도록 한다.
- 조짐이 보일 때, 슬그머니 동성의 직장선배에게 고충 토로하기
'OO 부장이 자꾸 따로 보자고 해요', 'ㅁㅁ 과장이 자꾸 술만 먹으면 노래방에서 손잡아끌고 같이 춤을 추려
해요' 등의 고충을 말이 잘 통하는 동성 선배에게 토로하면, 같이 자리에 배석을 했을 때 그런 분위기가 흐르지
않게 도움을 준다든가, 따로 자꾸 약속을 잡는 상사와의 약속에 배석을 해준다든가 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만약, 그 선배가 정말 사회생활을 잘 하고, 이런 일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분위기 안
험해지게 성추행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3) 꺼림칙한 상대는 철벽을 세워 피하기
이상하게 꺼림칙한 칭찬을 자주 하는 상사가 자꾸 일 끝나고 둘이서만 뭔가를 할 명분을 만들려고 한다거나, 전혀 이성적인 관심이 없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런 경우에는 본인보다 나이차이가 훨씬 나는 경우가 많다) 자꾸 관계를 엮어나가려고 애쓰는 사람이 같은 직장에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일적으로 엮이는 경우가 없다면 더더욱이 철벽을 치는 것이 좋다. 괜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다가 상대방은 본인에 대해 호감이 있다고 오해하게 만든다.
세대차이에 따라서,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빠뻘 나이의 부장이 같은 팀도 아니고, 같이 엮이는 프로젝트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저녁자리에 부르던 일이 있었다. 처음엔 정말 회사에서 회식이 많아 부르는 족족 거절할 수 밖에 없었지만, 갈수록 위에서 말한 사례들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났기에, 낌새가 이상해 일부러 명분을 만들어 피했었다. 내가 안 갔던 저녁자리마다 별 일이 없었을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내 촉을 믿고 피한 덕에 술자리에 참석하여 당할 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이 사례에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필자는 그닥 사회성이 좋은 성격도 아니고, 호불호가 확실하다. 그래서 그냥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감정소모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냥 본인의 판단에 의지하여 사례를 들은 점은 감안하여 본인 성향과 상황에 따른 판단은 본인이 하고, 이 조언을 들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본인보다 높은 상사 모두를 잠재적 성추행 가해자로 인지하자는 취지에서 적은 글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적은 대처가 그닥 막내나 저연차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기에 친절한 대처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상대방의 기분도 배려하면서 본인을 지킬 수 있는 예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 항상 나는 어쩌면 까칠해 보일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은 식으로 대처를 해왔고 대외 평판 등에 있어서도 본인의 행동 때문에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친절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의사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선택하되, 본인의 이미지나 평판을 생각해서 할 말이나 응당 해야 할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앞서 말한 성추행 경험 때문에 이 글이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그 사건은 위에서 나열한 상황이나 대처법을 사용할 상황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일이 아예 없기 위해서는 술자리에 절대 참석하지 말아야 하고, 상사는 무조건 경계하라는 조언으로 귀결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예방법이 100% 예방법은 되지 못한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이고, 예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 다음 글에서 대처법을 적어보고자 한다.
다음에도 길어서 스크롤 확 내려버리고 싶은 글 한 바닥 싸올게요~! 그 때 까지 행복하세요^^
P.S. 예방법에 '옷차림을 단정히', '회식 자리에서 술은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만큼만' 등의 얘기를 언급하지 않는 건 그 어떠한 변명도 범죄에 대한 excuse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