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지 1년이 지났다. 단 몇 개월만에 급속도로 몸이 쇄약해진 아빠는 오랫동안 앓아온 간암과 그로 인한 여러 합병증으로 지난 2월 우리 곁을 떠났다.
아빠가 떠나고 가끔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부모님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적이 내가 오랫동안 앓았던 아토피로 부모님댁에 내려갔을 때다. 나는 대학 입학을 하면서 고향집을 떠나 오랫동안 자취 생활을 했는데 그 이후로는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봤자 대학 시절 방학 때 한 두달, 직장인이 되어서는 길어봤자 며칠 정도다.
그러다가 새/헌집증후군을 앓으며 갑자기 아토피가 급격하게 심해졌을 때, 나는 도저히 서울생활을 홀로 견딜 수가 없어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으로 5개월 정도 요양을 갔다. 시골집은 공기가 정말 맑았고 여름밤에는 파란색 반딧불을 볼 수 있을만큼 아름답고 깨끗한 곳이었다.
그 기간동안 하릴없이 나는 개와 고양이와 산책을 하며 지냈고, 여름밤에는 반딧불이 노니는 밤거리를 산책했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개울가에 서 있는 다리와 목이 기다란 새를 관찰했고, 동네 할머니가 한 소쿠리에 파는 5,000원짜리 복숭아를 사서 부모님과 맛있게 먹었다. 몸이 아파 외지에서 내려온 딸에게 우리 부모님은 군소리를 하지 않으셨고 늘 맛있는 밥을 차려 주셨고 함께 먹었다.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때가 내가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보냈던 가장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빠와 보낸 가장 길었던 추억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소중한 시간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시골에 와서 몸이 점차 회복되는 모습이 좋았을 뿐이다.
아빠가 그렇게 떠나고 요즈음 그 빈자리를 부쩍 느낀다. 얼마 전 엄마는 시골집에서 혼자 일을 하다 넘어져 손목 뼈가 부러졌고 시골에서 운전을 못해 병원 치료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엄마는 딸이 사는 서울집에 올라왔다. 치료를 하고 우리 집에 지내는 동안, 팔이 다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사위와 딸이 사는 집에 함께 지내는 게 눈치가 보였나보다. 자꾸 설거지도 못해서 미안하다. 네가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하는 엄마의 안색이 늘 어두웠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아팠을 때는 나는 그렇게 부모님 집에서 그렇게 잘 지냈는데, 결혼한 딸 집에서의 부모는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는 없는 것 같아서 슬프다. 아빠가 있었다면 그래도 두 분이 돌보면서 잘 살아가셨을텐데 주눅이 든 엄마를 보니 아빠 빈자리가 부쩍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