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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Sep 12. 2020

코로나 0년, 표정을 읽는 능력은 퇴화될까?

마스크와 스크린에 가려진 얼굴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루이 C.K는 2016년경(정확히는 모르겠다),

코난 쇼(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나와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스크린타임의 증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코난쇼에 출현한 루이C.K


“전 애들을 키우는 게 아니에요. 이 애들이 나중에 될 어른들을 키우는 거죠. 스마트폰을 보다 보면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 그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게 돼요.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져요. 한 아이를 보고 “넌 뚱뚱해”라고 하면 그 아이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보고 “어,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 기분이 안 좋아지는구나”라고 느낄 수가 있어요. 반면에 넌 뚱뚱해를 문자로 쓴다면, “음... 재밌는데!” 정도로 그치고 마는 거죠. 그래요. 사람은 그냥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해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요. 스마트폰이 우리에게서 이런 능력을 앗아가고 있어요”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스마트폰이 아이들에게 득이냐 실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비대면 접촉이 점차 일상적인 인간관계(human interaction)로 자리 잡아가는 지금, 스마트폰 사용은 필수 불가결한 의사소통의 통로가 되었고, 스마트폰의 유해성에 대한 이야기는 더없이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루이 C.K가 토크쇼에서 이런 발언을 한 때는 코로나가 지금처럼 일상의 판도를 깡그리 뒤집기 전의 시간이었고, 적어도 스크린 타임에 머무를 것이냐, 아니면 타인과의 직접적 소통의 기회를 더 늘릴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였다.


<span>Photo by <a href="https://unsplash.com/@artbyhybrid?utm_source=unsplash&amp;utm_medium=referra


2020년, 코로나 0년 차. 흩어지는 것이 연대가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사람을 만나려면, 학교를 가려면, 동료를 만나려면 스크린에 접속해야 한다.

그나마 외부에 나가더라도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이 가려진 채 타인과 조우한다.


어느 날 점심 중에, 초등학생 아들을 둔 회사 이사님이 말했다.


“아들이 그러는데, 개학하고 나서 담임 선생님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담임 선생님이 마스크 밑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해봤는데 이야기 듣고 나서 좀 충격받았어요”


타인의 표정을 읽는다는 건,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간은 표정(얼굴 근육의 움직임, 안색의 변화 등)이라는 기호를 통해, 상대방이 즐거운지, 슬픈지,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 아니면 애써 숨기려 한 감정(또는 당혹감)이 찰나의 순간에 드러났다가 언제 사라지는지, 어느 순간에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지 그리고 그 미세한 떨림이 의미하는 바는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맥락에 고려하여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등의 언어화되지 못한 소통방식으로 상황을 추측하고, 상호작용해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표정 읽기’라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타인을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습득하게 된다.  


상대방의 기분과 마음, 사람의 상태를 읽어내는 인간의 생래적인 감각이 ‘상실’의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제대로 ‘발달’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인간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우리는(또 아이들은) 정말 ‘공감’이라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까(또는 공감이라는 능력을 부여받지 못하게 될까)? 아니면 인간은 다른 방식을 통해 ‘공감’이라는 똑같은 감정을 유지하게 될까(이모티콘과 같은 단순화된 방식으로)?


미국 심리학자 폴 에크만(감정 인식 기술 연구)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얼굴에는 42개의 근육이 있고, 이 근육을 조합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표정은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표정 가운데, 문화권을 넘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감정은 총 35가지로 인간이 표현해낼 수 있는 감정의 0.2%만 차지한다고(출처: 행복한 표정엔 17개가 있다/한겨레 곽노필의 미래창).

마티네즈 교수가 분류한 6가지 기본 감정에 복합 감정을 추가한 20가지 표정

물론 영상통화를 통해 사람의 표정을 관찰하고 감정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지 않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통화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은 미세하게 관찰하기 어렵고, 또 스크린의 프레임 밖을 벗어난 다른 영역(손이나 몸통, 다리 등의 제스처: 예를 들어, 얼굴은 웃고 있는데 손이나 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다거나 등, 한 사람이 풍기는 전인적인 아우라, 비언어적인 메시지 발신)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사라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몸짓, 안색, 표정, 발성 중 어느 하나의 단순한 텍스트로만 상대방의 전체를 읽어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정답은 광희마스크인가요? 라고라고라?


코로나 시대. 실제로 누군가를 대면했을 때 일어나는 소프트한 터치 또는 작은 제스처들이 주는 어떠한 기류를 읽어내는 능력은 어떤 방식으로 퇴화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발달하게 될까? 표정이 사라진 자리에, 보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될까?(화난 표정을 짓기보다, ‘나는 정말 화가 났어’라고 표현하는 언어적방식의 표현 증가) 아니면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의 표정만으로도 갖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될까? 아니면 정말 이도저도 아니게 될까? 공감 능력이 퇴화된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진 수많은 행위자’로 구성된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굴러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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