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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Jan 29. 2022

아빠의 마지막 하루하루

언젠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는 제목을 문득 스친 적이 있다.

도저히 께름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

나는 그 글을 눌러보지 않고 그저 넘겼다.


미우나 고우나

가까이 있으나 멀리 떨어져 있으나

늘 한 켠에 존재하는 이를 이제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한번 끈을 놓쳐 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지난주, 투병 중이던 아빠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있단 소식을 듣고

서둘러 주말 표를 구해 고향에 내려갔다.


간암 말기에 신장병으로 투석 중인 환자,

몇 개월 전에만 해도 53kg이었던 아빠의 몸무게는

43kg로 줄어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자그마해질 수 있는지,

사람이 얼마나 뼈의 형상대로 몸이 수축할 수 있는지

매번 아빠를 만날 때마다 느낀다.


병원에 도착해 아빠가 있는 투석실에 들어가니,

베레모를 푹 눌러쓴 아빠가 투석실에 가만히 누워 나를 바라봤다.

아빠에게 손짓을 하자, 아빠도 한쪽 손을 흔들어 보였다.


투석이 끝나고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다시 시작됐다던 섬망 증세로  

밤에 자꾸 소리를 지르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던 아빠는

그날은 아침에도 낮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있지도 않은 돼지고기를 자꾸 찾았는데, 듣다듣다 아빠의 말에 응수한다고 '그 돼지고기 내가 먹었지'라고 하자, 아빠는 갑자기 흥분하며 내게 욕을 했다. 


그 주말, 아빠와 조금의 대화라도 나누고 돌아올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처절히 무산됐다.

아빠는 아주 잠깐잠깐 자는 시간 외에는,

소리를 지르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아빠는 그런 식으로 계속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며칠 사이, 보조기구를 사용해서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진 아빠를 보면서

간병에 지친 엄마는 아빠를 집에서 모시는 것과

일주일에 세 번 통원치료를 가는 일이 까마득하다고 했다.  

엄마는 요양병원과 호스피스 중, 어떤 선택이 아빠에게 나을지 고민했고

나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엄마와 함께 투석이 가능한 요양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다.


상황설명을 유심히 듣던 상담 간호사는 아빠는 집중치료실에 들어가야 하는 환자라고 말했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입원 이후 면회는 저기 보이는 유리문 벽에 가로막혀 만나야 한다고 했다.

병원으로 들어오는 유리 출입문을 면회장소로 활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마저도 1개 공간밖에 없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예약하지 않으면 면회는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붙였다.  

아빠는 이곳에 있더라도 삶을 연명하게만 될 것이다.

치료가 아닌 연명만 하는 아빠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가치판단은 누가 할 수 있을까)

연명하더라도 얼마나 아빠가 버틸 수 있을까,

게다가 집중치료실에 들어 간 아빠가 이 출입문 쪽으로 자주 내려올 수 있을까,

면회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는 할 수 있을까,

출입문을 빠져나오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이상적인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어렴풋이 있었다.

죽음을 직감하고, 마음과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던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  

그리고 되도록이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하지만 모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요즈음이다.

그것은 바람과는 또 다른 문제라는 걸 아빠를 보며 알게 됐다.

(그리고 예전에 대장암 투병과 치매를 겪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집으로 3시간씩 간병을 오던 요양보호사도

임종을 앞둔 많은 분들이 아빠와 같은 형태로 섬망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죽음이 현실에서 더 많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내가 서울에 올라오고 며칠 뒤에 아빠는 일반병원에 입원했다.

예전 병원에서 주치의가 말한 것처럼 똑같이.  

아빠의 몸은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방도는 없다는 말에

우리 가족은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면 그리로 아빠를 모시기로 했다.

극심한 섬망 증세로 진정제를 맞은 아빠는 요 며칠간

아주 오랫동안 깊게 잠을 잔다고 했다.

그 덕에 간병을 하고 있는 엄마와 언니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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