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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Mar 09. 2022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갔다

추운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신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겨우내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풀리며 그렇게 떠나시는 거라고... 그 말 때문인지 요즘 주변에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빠의 장례식이 있고 3주 정도가 지났을까, 같은 팀의 팀장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부고 소식을 전하기 전 목요일 급작스럽게 일 때문에 퇴근을 한다던 팀장님은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잠깐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심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랐지만 월요일 회사 경조사란에 부고 소식이 올라왔다.


지지난 주 월요일 근무를 끝내고 조문을 다녀왔다. 장례를 한번 치러봤기 때문에 익숙하게 절을 하고(절할 때, 여자는 왼손이 위로... 등등) 인사를 드렸다.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낸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는 말만 남겼다. 그 말 외에는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갔을 때, 너무 무거운 분위기를 떨치려 애써 웃음을 지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누군가가 떠나고 난 자리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무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장례식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조 계약하고 이것저것 처리하면서 이상하게 감정적인 것이 많이 사라지더라고. 문서나 계약을 처리하는 것의 순기능이 있는 것 같다고. 아빠가 돌아가신 날, 언니와 나도 장례식장 직원 안내를 듣고 계약을 마친 뒤에 비슷한 말을 나눴다  


아빠의 호흡이 밤 12시 16~20분 사이에 멎고 더 이상 아무런 인기척이 없을 때, 엄마는 아빠의 오른손을 그리고 언니는 아빠의 왼손을 잡았고 있었다. 아빠는 평안하게 잠자듯이 그렇게 떠났다. 호흡기를 달고 숨을 쉴 때 조금 찡그리고 있던 미간도 모든 긴장이 풀린 사람처럼 평평해졌다. 아빠의 얼굴은 곤히 잠든 듯 평화로워 보였다. 그 뒤에 우리가 어떤 말을 나눴는지 한 달이 지났다고 벌써 가물가물하다. 곧 엄마는 간호사한테 가서 아빠의 임종소식을 전하라 했다. 나는 병원 데스크로 가서 간호사들에게 000 환자가 임종하신 것 같다고 말했고 데스크에 기대 회사와 연결된 상조회사에 전화했다. 그날 오전,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기차로 내려가면서 문의 전화를 했던 터라 상조회사 상담직원은 단숨에 내 목소리를 알아봤다. 낮에는 울면서 전화 상담을 했는데, 저녁에 임종 소식을 알릴 때는 이상하게 평정심이 지켜졌다. 장례식은 같은 병원에 있는 곳으로 정했다고 하니 곧 장례지도사분이 30분 내로 그리로 갈 거라 말해주었다. 상조 상담은 24시간 가능하다는 안내를 봤었는데, 낮에 전화를 받은 상담원이 밤 12가 넘어서도 또 전화를 받아서 내심 놀랐다(아마 사장일지도 모르지만).   


병실로 돌아와 의사가 오기 몇 분 동안, 우리는 아빠를 안아주고 아빠를 쓰다듬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발치에서 사진으로 조금 찍어두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가 아빠의 손을 충분히 잡아주었는지 충분히 안아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곧 나이가 조금 어려 보이는 의사가 병실에 들어섰다. 맥박이나 몇 가지를 간단히 체크했던 것 같고 핸드폰 후레시로 아빠의 감긴 눈꺼풀을 들춰 비춰보았다. 의사는 동공을 확인하려는 거겠지만, 그 밝은 빛을 쏘이는데도 아무런 미동이 없는 아빠가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짜증 내면서 뭐라고 했을 텐데. '000님, 12시 27분 사망하셨습니다'. 젊은 의사는 그 말만 남긴 채 아무런 시선 마주침도 없이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나는 기분이 다소 나빴다. 간호사들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빠에게 달려있던 여러 가지 선들을 제거했고, 능숙하게 커튼을 둘러치더니 아빠를 옮길 채비를 했다. 병원이 임종 환자 뒷정리를 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엄마는 놀라서 이렇게 서둘러야 하냐고 물었지만 간호사는 그렇지 않으면 굳기 시작한다고 했다. 굳기 시작한다는 말이 왠지 묘했다. 곧 장례식장 직원이 병실 밖에 도착했고 고인을 장례식장까지 옮기는데 필요한 물품(?)이 있는데 무엇이 3만 원, 무엇이 4만 원이어서 도합 7만 원이라고 했다. 어느 장례식장을 가도 똑같은 것이고 이따 상담할 때,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아빠를 어떻게 옮겨 갔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우선 얼른 병실 짐을 모두 챙기라는 말에 후다닥 눈에 보이는 것들을 대충 가방에 욱여넣고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장례식장은 입원 병동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단 몇 걸음만 가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삶과 죽음은 참 가까이도 있었다. 일층에 도착하고 복도 주변을 서성이다가 직원의 안내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새벽녘 조용한 사무실에는 남자 직원 한 명이 상주해 있었고, 짐을 풀고 온 우리를 책상 주변으로 둘러 앉히고 장례 절차를 설명했다. 장례식장과 계약할 것은 장례 실과 영안실 대여비, 식사비(그리고 대기업과 계약되어 있어서 밥은 맛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리고 돈 단위에 따라 차림상이 달라지는 제단 위에 올릴 제사상 옵션까지. 묫자리로 갈 건지, 화장터로 갈 건지, 화장터로 갈 거면 몇 시에 발인을 잡을 건지, 화장비용은 얼만지. 그리고 필요한 서류들도... 그 외 나머지 사항은 이따 오는 상조회사의 장례지도사 분과 상의하면 된다고 했다. 직원의 설명이 끝나고 직원이 설명한 대로 금액이 적힌 종이를 확인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면 언니는 내게 '참, 누군가 돌아가시구나도 해야 될 게 많아서 슬퍼할 겨를도 없겠다'라고 했던 것 같다. 잠시 뒤 장례지도사가 도착했다. 우리는 제일 작은 장례실을 정하고 짐을 풀었다. 거기서도 장례지도사가 가지고 온 파일로 여러 설명을 들었다. 금액에 따른 서비스 비용 설명을 듣고 추가로 원하는 제단에 꽃 그리고 유골함의 옵션 등...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는 선택만 하면 됐다. 늦은 시간이라 장례지도사는 곧 자리에서 떠났고 우리는 장례실에서 잘 준비를 했다. 낯선 공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엄마와 언니는 꿈에서도 우는 듯 흐느꼈고 나는 딱딱한 바닥에 누워 영안실에 누워있을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가 참 춥겠다.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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