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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Mar 21. 2022

아빠의 49재를 앞두고 드는 생각

내일은 아빠의 49재다. 그리고 오늘은 아빠의 생신이다. 하루 차이로 아빠는 세상에 왔다가 세상을 떠난다. 엄마는 내일 아빠 상에 올릴 제사음식을 만들며 마음이 유독 먹먹하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49일. 7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실 아빠는 늘 고향 어딘가에 계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49일보다 훨씬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49일이나 된 건지, 49일밖에 안된 건지 여전히 어떤 감각으로도 설명이 안된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그 며칠 또는 몇 년이 지나더라도 아빠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태 영화나 게임, 뉴스 같은 곳에 묘사된 드라마틱한 죽음, 이야깃거리가 되는 죽음에 익숙했던 걸까. 그저 홀연히 흘려듣던 죽음, 그런가 보다 하던 죽음, 단어로만 존재하던 죽음이 아빠가 떠나간 이후로 더 무거워졌다. 


아빠가 시한부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6개월에서 일 년 아니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세상에 나온 이후로 늘 곁에 있었기에 아빠가 영영 떠나간다는 게 뭔지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번은 아빠가 생각보다 너무 오래 살아서 가족이 긴 간병으로 무너져 버릴까 더 걱정되기도 했다. 아빠는 젊을 때에도, 제법 건강할 때에도 가족을 고생시키는 사람이었는데, 나이 들어서 아프면서까지 가족을 또 고생시키는 건 부당하다고도 생각했다.  


아빠의 임종 소식을 듣기 전까지 아빠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나는 아빠의 존재를 하나의 방향, 하나의 결로 해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의 죽음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 조차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사실 나는 놀랐다. 아빠의 죽음이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슬펐으므로. 슬프고 미안했으므로. 아빠의 임종 소식을 듣고서야 그 감정이 분명해지다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미움과 원망도 있었지만 가족으로 보듬고 사랑하던 시간들도 많았다는 것을, 떠나보냈기에 미화되는 건가. 왜 알지 못했을까. 야속하다. 


떠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나, 추모를 하나. 못해준 것 그렇게라도 갚아주려고 그런 의식을 만들어냈나...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고 추억을 하는 일. 글을 쓰면서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리는 일. 기억해주는 일. 


아빠가 떠나고 혼잣말을 종종 했다. '아빠 지금 어딨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49재,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빠는 현생과 사후세계 중간 즈음 있었을까? 아빠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디에 있든 아빠가 평화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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