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3. 매출이 안 좋아서요

by 민 과장


“요새 매출이 안 좋아서요.”


영업하며 듣는 단골 멘트 중 하나다. 정말 매출이 안 좋은지 아닌지를 알 수 없지만, 뭐라 대응할 수 없는 말이다. 나 또한 이 멘트를 자주 들으며 회사를 다녔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2018년 일이다. 서울 부촌에 위치한 병원. 동네에서도 친절하다고 소문난 곳이다. 첫 방문이니 영업보단 정보 전달을 위해 방문했다. 점심시간에 방문했던 터라 병원엔 원장님만 계셨다.


“어디서 오셨어요?”


답을 하니 마치 길거리 약장수를 보듯, 시선이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허리에 걸친 뒷짐을 풀고 손사래를 쳤다. 내가 “학회 일정이에요”라고 말하자 흔들리는 손끝은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9시에 수술 있는데 장비 좀 빌려줘.”


첫 만남 이후 첫 번째 전화였다. 통화를 끝내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새벽 7시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를 계기로 발전할 관계를 생각해서였을까? 어쨌든 장비를 구하려고 두 시간 내리 휴대폰을 붙들었다.


8시 50분, 원장님은 “어, 고맙다” 한 마디를 하곤 총괄실장님에게 바통을 넘겼다. 실장님은 손에 있던 박카스를 주면서 한쪽 손을 가슴에 대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장비는 원칙상 대여가 금지인 장비라는 걸 서로가 안다. 나는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한마디를 남기고 병원을 나왔다.


그 이후로 물건을 팔 생각은 접어두고, 관계를 쌓는 데 집중했다. 매달 발행되는 최신 의료 정보를 메일로 보내드리고, 학회에서 들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짧게 정리해 전달했다. 한 번은 병원 전산 시스템 오류로 환자 진료 기록이 날아갈 뻔했을 때, 새벽까지 전화로 기술팀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 드리기도 했다. 몇 달 뒤 실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달 매출이 역대 최고예요. 원장님도 기분 좋으셔서 뭐든 다 OK 하실 거예요.” 병원으로 오는 길, 실장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원장님, 이렇게 계약하시면 어떨까요?”


미리 준비해 온 계약서를 내밀었다. 1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하던 순간이다. 진료 중이라 마스크에 가려 표정은 안 보였지만, 눈꼬리가 살짝 접혔다. 내 표정도 그 모습에 전염이 됐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새 매출이 안 좋아서 다음에 하자.”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역대 최고 매출인데, 매출이 안 좋다고? 예상치 못한 말에 머리가 텅 빈 듯했다. 웃고 있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굳어버렸다. 실장님도 다음에 다시 오라며 박카스 한 병을 건네줬다. 그 손에서 미안함이 묻어났다.


실장은 흐름을, 원장은 타이밍을 말했다. 병원을 나오며 깨달았다. ‘역대 최고 매출’과 ‘매출이 안 좋아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매출이 안 좋다는 말은 숫자가 아니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거절의 언어였다. 영업의 정답은 없지만, 타이밍은 있다. 타이밍을 안 이상, 설득은 현금 흐름 설계로 구체화되어야 했다.

이전 03화파트 2. 현장이 가르쳐준 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