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에서 가격은 문을 열지만, 온도는 마음을 연다. 2022년, 나는 이 진리를 김영모 제과점 빵 하나로 깨달았다.
우리 회사는 2년마다 정기 조직개편을 통해 거래처를 바꾼다. 이는 전임자가 놓친 부분을 후임자가 채워 성과를 내는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한다.
벌써 세 번째 거래처 변경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당시 담당하게 된 거래처 원장님은 우리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상당했다. 첫 방문,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우리 이제 대리님 회사 제품 안 쓸 거예요”라는 면박이 날아왔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너무 당황해서 “어… 네…” 하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업 인생 처음 겪는 당혹감에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전임자에게 물었다. 퇴사를 앞두고 6개월간 관리를 방치한 상태였다. 전임자의 실수는 크게 셋이었다. 1. AS 예약 문의에 48시간 넘겨 답한 일이 두 번, 2. 긴급 소모품 요청을 놓쳐 시술이 지연된 일, 3. 납기 협의 누락으로 납품 지연. 화가 났지만 해결은 내 몫이었다. 무작정 사과나 강요는 오히려 독이 될 터. 며칠 밤낮 고민 끝에, 나는 세 가지 전략을 세웠다.
첫째, ‘관리받는 느낌’을 드리는 것이었다. 원장님은 그동안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거창한 제안 대신, ‘지나가는 길에’ 편하게 들러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묻는 이웃 같은 방식을 택했다.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꾸준히 찾아갔다. 선생님들의 고충이나 원장님의 요청사항을 해결하는 일이 쌓여갔다.
둘째, 병원 성장의 파트너가 되기로 했다. 젊은 원장님이니 매출과 환자 유입에 관심이 많을 거라 판단했다. 제품 이야기는 잠시 접었다. 이전 거래처 중 비슷한 규모의 성공 병원을 골라 사례전략실행 3단계로 정리했다. SNS 마케팅의 구체적인 포스팅 시간대, 해시태그 활용법, 환자 유입 경로별 상담 스크립트까지 분석해 전달했다. 반신반의한 원장님은 첫 달에 신규 환자가 30% 증가하자 완전히 방향성을 잡았다.
셋째, 비즈니스를 넘어선 진정한 신뢰가 필요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우리 회사 부장님의 진료였다. 부장님이 병원을 알아보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주저 없이 그 병원을 추천했다. “원장님 실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회사 강사로도 활동하시거든요.” 시술 후 부장님은 “민 대리가 추천한 병원, 정말 꼼꼼하고 좋더라”며 사내에 입소문을 냈다. 금전적 보상이나 리워드는 전혀 없었다. 순수한 추천이었고, 이후 지인 소개가 다섯 건 더 이어졌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날카롭던 눈매는 점차 부드러워졌다. 어느 날은 원장님이 먼저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민 대리님, 오늘 환자분이 ‘직원분이 추천해서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동받았습니다.”
세 전략은 숫자로도 관리했다. 12주 동안 주 2회 방문, 평균 6분 면담. 7건의 환자 소개, 마케팅 환자 유입 120% 증가. 지표를 통해 직접 보여드리니, “민 대리님은 영업사원이 아니라 우리 병원 컨설턴트 같아요”라며 등을 토닥여 주셨다.
며칠 뒤, 원장님이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민 대리님 덕분에 우리 병원이 발전하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쇼핑백 안에는 김영모 제과점 빵이 들어 있었다. 갓 구운 몽블랑은 아직 따뜻했다. 비싼 선물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어떤 거액의 계약보다 값진 의미였다. 처음 면박을 당하며 느꼈던 수치심과 막막함이 빵의 온도만큼 따뜻하게 가셨다.
그 이후 2억 원을 재계약했다. 하지만 계약서보다 기억에 남는 건 원장님의 한마디였다. “민 대리님이 아니었다면 거래 끊었을지도 몰라요.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꾸려고 했거든요.”
2024년에 헤어질 땐, 아쉽다며 종종 점심 먹으러 들리라고 했다. 가끔 지갑이 얇아지면, 원장님 안부도 물을 겸 김영모 제과점에 들러 빵을 사 들고 찾아뵙곤 한다. 그때마다 원장님은 웃으며 말씀하신다. “아직도 거기 빵 사 오시네요. 이제는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2억 원 재계약서보다 값진 건 김영모 제과점 빵이었다. 차가운 거절을 따뜻한 신뢰로 바꾼 건 제품 스펙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였다. ‘자주·정확·먼저’. 영업의 해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리고 그 답은 따뜻한 빵 한 조각에 담겨 있었다. 이때의 진정성은 책임감이었다. 온도가 길을 열면, 그 위에 가치의 수치화가 가격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