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7. 디폴트 변경

by 민 과장


한때 인터넷의 기본값은 익스플로러였다. 그러나 업데이트가 더딘 사이, 크롬은 더 빠른 속도와 유용한 기능으로 일상의 디폴트가 되었다. 디폴트가 바뀌는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작은 불편이 작은 이점에 밀릴 때, 균열은 조용히 시작된다.


영업도 같다. 특히 의료계처럼 보수적인 시장에선 익숙함이 곧 디폴트다. 2019년, 60평 규모의 비거래처 한 곳이 있었다. 지역 맘카페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다. 원장님을 뵙기 위해 처음엔 할인 품목 전단을 놓고 갔다. 다음에 갔을 때, 그 전단은 데스크 한편을 지키고 있었다.


‘방문 횟수가 부족해서 그랬나?’ 싶어 발걸음을 더 늘렸다. 하지만 인사가 잦아질수록 실장님의 눈매는 점점 가늘어졌다. 어떻게 하면 전달될까 고민하다 보니, 꿈에서도 병원 문턱을 넘었다.


몇 주를 고심한 끝에 본사에서 샘플 재료를 받아, 유명 전문의 세미나 전단과 간략한 손 편지를 함께 동봉했다. 핵심은 ‘당장 써볼 수 있는 이점 하나’였다.


원장님! 샘플 드립니다! 꼭 뵙고 싶습니다.

A 재료 꼭 써보시고 연락 주세요.

1. 환자 예후가 어떤 식으로 좋음

2. 처치 시간 00분 단축

3. 비용 00원 감소

4. 임상 논문 00

5. 주변 B, C, D에서도 사용 중

민 주임 010-0000-0000

(00 수치는 예시임.)


며칠 뒤, 전화가 왔다.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얼굴이 트였다. 종종 들르며 직원들과도 웃으며 인사할 수준이 되었다. 가끔 “영업은 안 하고 수다 떨러 오셨어요?”라는 핀잔이 나오면, “저 영업사원 아닌데요” 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관계는 그렇게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10주 차. 우연히 방문했을 때, 직원들이 팔을 붙잡았다. 큰 장비에 문제가 생겼다며 도와 달라고 했다. 경쟁사 직원이 연차 중이라 해결이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상황부터 확인했다. 자사 장비가 아니었지만 다행히 간단한 문제였다. 몇 군데만 손보니 직원들은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 뒤, 장비 교체 타이밍이 도래했다. 병원은 나에게만 연락했다. 첫 장비가 균열의 시작이었다. 이후 소모품과 재료까지 우리 제품으로의 전환이 이어졌다. 익스플로러에서 크롬으로 넘어갔듯, 그 거래처의 기본값이 조용히 바뀌었다.


“계속 갔는데도 성과가 없었다”는 말은 흔하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매 방문마다 그들이 체감한 명확한 이점이 있었는가. 이득이 반복되면 관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디폴트를 만든다. 디폴트를 바꾸는 힘은 빈도가 아니라 일관된 가치에 있다.


기본값은 영원하지 않다. 익스플로러가 그랬듯, 나의 자리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가 업데이트를 멈추는 순간, 나의 방식 역시 누군가의 새로운 디폴트에 밀려난다. 그래서 오늘도 한 번 더 찾아가, 다음 방문을 기다리게 만들 ‘하나의 이점’을 준비한다. 디폴트는 그렇게 바뀐다. 그러나 ‘자주 보이는 진정성’은 때로 번거로움이 된다—프로의 포맷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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