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10. 프리즘

by 민 과장


초등학교 과학 시간, 선생님이 자신 있게 무지개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친구들은 거짓말이라며 웅성거렸다. 선생님은 빙긋 웃고 손에 든 삼각기둥을 창가로 가져가 커튼을 치더니 빛을 통과시켰다. 칠판에는 알록달록한 빛이 쏟아졌다. 교실은 탄성으로 가득 찼다. 한 줄기 빛이 프리즘에 닿는 순간 색이 흩어진다는 걸 그날 배웠다.


영업 10년, 나는 매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난다. 어떤 원장님은 주식의 언어로, 다른 원장님은 부동산의 논리로 세상을 본다. 누군가는 실연의 아픔을 토로하고, 또 누군가는 신앙의 지혜를 나눈다. 나는 그들의 빛을 받아 내 안에서 굴절시킨다.


한 번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원장님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위로로 시작한 대화는 시간이 지나며 관심사와 취미로 번졌고, 다음 날 아침엔 노란 잔상 같은 숙취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노란빛조차 다음 만남의 친밀함을 예고하는 스펙트럼의 일부였다.


어떤 날엔, 오전엔 성경 구절에 귀를 기울이고, 오후엔 선문답을 듣는다. 믿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언어를 맞추는 일이다.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내 안에 색 하나씩이 쌓인다. 다음에도 얘기해 달라고 에너지를 얹는다. 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 안에서 정리하고, 다른 맥락에 맞게 다시 건넨다.


그렇게 이야기가 내 안을 통과하면, 주식 고수인 원장님에게 배운 투자 원칙은 투자를 고민하는 다른 원장님께 재미난 일화로 번역되어 전해진다. 독실한 원장님이 말한 성찰의 언어는 병원 매출이 감소한 원장님에게 깊은 위로의 색으로 번져나간다.


덕분에 중요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필요한 상황에 사람을 소개해 주며 병원의 발전에 기여한다. 그 관계 사이에서 나 또한 다양한 공부를 통해, 마치 면을 깎아 각을 늘리듯, 커다란 프리즘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서 받은 빛을 다른 원장님에게 필요한 새로운 색으로 전달하는 일. 그게 내가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관계가 단단해지면 제안도 자연스럽다. 내 결혼 준비의 고충을 이야기하다 끝에, “진료 보실 때 이런 부분 불편하지 않으세요?” 하고 묻는다. 상대는 내 문장에 자기 경험을 포개며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그때 준비한 자료를 펼친다. “요즘은 이 재료나 장비가 대세예요. 어떻게 보세요?”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간 제안은, 마치 물이 흙에 스며들듯, 설득이 아니라 합의처럼 받아들여진다.


나는 프리즘이다. 원장님의 말이라는 빛을 굴절시켜, 그 사람에게 필요한 색을 꺼내 보여준다. 원장님들의 한 가지 질문이 내 안에서 여러 의미로 나뉘고, 나는 그 스펙트럼 중 가장 알맞은 색으로 답한다. 관계는 그렇게 무지개처럼 남는다.


가끔은 내 프리즘이 흐려져 한 가지 색만 보일 때도 있다. 실적에 급급해 제안을 앞세워 계약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럴 땐 한 걸음 물러서 빛의 세기와 각도를 조정한다. 흐린 유리를 닦아내듯 내 마음을 다시 맑게 한다. 늘 무지개가 나오진 않지만, 종종 아름다운 빛이 쏟아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프리즘을 키울 수 있을까? 10년간 시행착오 끝에 찾은 방법은 세 가지다.


프리즘을 키우는 3가지


1. 채집 : 상대 말을 끝까지 듣고 메모 3줄(사실·의도·감정), 모르는 건 왜/무엇/언제/어떻게로 묻기.


2. 분광 : 들은 내용을 1 문장 요약 핵심 1~2개로 정리하고, 교차 검증(숫자·출처, 특히 투자/임상) 후 적용 포인트 찾기.


3. 투사 : 고객 상황에 맞춰 브리지 문장 두 가지 선택지, 사례는 익명·동의 준수. (끝맺음은 “이 방법이 어울릴까요? “처럼 부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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