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by 민이새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가끔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그 자리는 이상하리만치 솔직한 공간이다.
비싸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지만, 왠지 모르게 진심이 앉아 있는 것 같은 자리.
누구는 친구와 웃고, 누구는 스마트폰만 보고, 누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그 테이블에선
삶의 단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


올해의 무더위만큼 더운 어느 여름밤이었다.
평소 즐기는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들고, 시원한 캔맥주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바람은 눅눅했고, 바닥엔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었고, 테이블은 끈적했지만 그곳에서만큼은
누구도 예의를 차리거나, 좋은 척하거나, 강해질 필요가 없어 보였다.
어떤 여자는 친구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내며 고민 상담을 하고 있었고, 옆자리 중년의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몇 번이나 “괜찮다니까”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컵라면 위에 올린 젓가락을 자꾸만 흔들고 있었다.

사람은 가끔 말보다 손이 먼저 진심을 드러낸다.


그날 나는 몇몇 테이블을 스쳐 지나가며,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선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가야 할 목적지도 없고, 다다를 성공도 없고, 마무리해야 할 과제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다.
마치 인생이라는 큰 시계에서 벗어난 조각 같은 시간.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잠시 쉬거나, 슬퍼하거나, 혹은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난다. 그 작은 휴식 후에.


편의점 앞 테이블은 마치 작은 사회 같다.

의자 수는 한정돼 있고, 음료 하나면 몇 시간도 앉아 있을 수 있으며, 누구든 허락 없이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목소리를 낮추는 것, 자리 차지하고 너무 오래 앉지 않는 것, 술 마셔도 폐 끼치지 않는 것.
법은 없지만 모두가 ‘암묵적인 배려’를 지키려 애쓴다.
그 모습이 왠지 감동적이다.
제멋대로인 공간 같지만,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섬세한 공간.


며칠 전 밤 10시쯤, 아주 어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편의점 앞에 앉아 있었다.
혼자였으면 어쩌면 제지당했을 텐데, 둘이 있으니 ‘친구끼리 라면 하나 사 먹는구나’ 싶은지
직원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컵라면 하나를 두고 나눠 먹으며, 엄청난 비밀이라도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아이가 “우리 진짜 인생 막사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둘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문득, 어릴 땐 인생을 많이 고민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살아내는 데만 집중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꽤 슬픈 일이라는 것도 함께.


편의점 앞 테이블은 어른과 어른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60대 아저씨가 20대 청년 옆에 앉아 술을 마시며 이야길 나누는 걸 봤다.
말도 안 되는 나이차이지만, 둘은 담배 한 개비를 나눠 피우며 인생 이야기도 나누는 듯했다.
거긴 직급도, 사회적 지위도, 연봉도 필요 없다.
오로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만 존재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회사에선 실적 가면, 집에선 괜찮은 가장 가면, 친구 앞에선 쿨한 가면.
그 모든 걸 벗고 앉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편의점 앞 테이블 같은 자리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나 진짜 괜찮은 걸까?” 하는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게 된다.
그 질문의 해답은 없어도,
잠시 앉아 쉬어갈 테이블 하나쯤 있는 삶은 분명 더 따뜻하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누구나 찾을 수 있다는 게
생각보다 꽤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