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엔 사람들의 행동을 유난히 더 보게 된다.
누군가는 우산을 꼭꼭 쓰고 걷고, 가끔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비를 맞는다.
어떤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뛰어가고, 어떤 사람은 발걸음을 느리게 하며 땅만 쳐다본다.
그중에서도 나는 우산 없이 걷는 사람들을 보면 눈이 간다.
그건 단지 귀찮아서거나, 우산이 없어서가 아닐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오히려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한, 혹은 감당해 보기로 결심한 듯한.
그 사람은 무언가에 지쳤거나,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거나,
혹은 그저, 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중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날이 있다.
우산은 가방 속에 있지만 꺼내지 않고,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있는 그대로 맞고 싶어진다.
그건 자학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그냥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아주 솔직해지는 순간.
뭔가 버거운 날엔 비라도 나를 때려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뭔가 슬픈 날엔 눈물 대신 비가 울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날을 감추며 살아간다.
슬픈 날엔 “괜찮아”를 반복하고,
힘든 날엔 “그래도 해야지”를 주문처럼 외운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걷는 그 순간만큼은
그 모든 괜찮음과 의무를 내려놓아도 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비가 어깨를 적시는 걸 막지 않고,
신발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걸 감당하면서도,
마음은 오히려 조금씩 정화된다.
사람은 종종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가야 비로소 떠오른다.
어느 날, 비 오는 오후에 길을 걷다가 한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우산도 없이 손에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이상하게 편안해 보였다.
물에 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붙어 있었고, 바지는 무릎 아래까지 젖어 있었지만
그 입가엔 아주 옅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박혔다.
그건 인생에 지는 법을 아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미소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인생은 젖기도 하지. 그렇다고 끝나는 건 아니야.”
우산 없이 걷는다는 건 작은 용기이자 작은 체념이다.
그리고 그 체념은 때때로 구원에 더 가깝다.
세상이 나를 젖게 해도 괜찮다는 마음.
내가 이 젖은 상태를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젖은 채로도 괜찮다는 자포자기와 수용 사이의 중립 지대.
우산을 쓴 사람은 비를 피하고 있지만,
우산을 들지 않은 사람은 비와 함께 걷고 있다.
그 차이는 작지만,
어떤 날엔 그것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전부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우산을 쓰면 그 무게가 더해질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냥 맞았다.
비는 예상보다 따뜻했고, 조용했고,
그 어떤 위로보다 솔직했다.
나는 그날,
“살아 있다는 건, 젖을 줄 아는 일”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비를 맞는 사람을 보거든,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어쩌면 지금, 삶과 아주 정직하게 마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까운 중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