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면 종종 낯선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분명히 나인데, 어쩐지 내가 아닌 것 같은,
표정이 굳어 있고, 눈동자가 멍하고, 피로가 피부 아래로 스며든 얼굴.
그럴 땐 문득,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껴안아왔다.
가족, 친구, 아이, 때로는 낯선 사람의 슬픔까지도
내 가슴으로 감싸 안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을 껴안은 기억은 희미하다.
부끄럽고,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져서 한사코 외면하고 미뤄왔다.
‘나를 껴안는다’는 말은 단순한 위로나 자아도취와는 다른 문제다.
그건 자기애(自己愛)도, 자기 합리화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이해(自己理解)에 가까운 일이다.
나의 부족함과 실수를 모조리 인정하고,
내가 감당하지 못한 날들을 그대로 품어 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만든 실패의 목록을
마음속에 숨겨두고 산다.
그건 자잘한 실수부터,
인생을 바꿔버린 결정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목록 앞에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꾸짖고, 때로는 벌한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나를 혼내며 살아왔다.
나를 껴안지 못한 시간들의 결과였다.
나를 껴안는다는 건,
이제 와서 모든 걸 용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보다는 “나는 나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비루했던 날도 있었고,
외면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나는
결국 나만의 방식으로 버텨낸 증거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내 안의 작고 여린 아이가 울고 있었고,
어느 날은 내가 만든 후회가 칼날처럼 나를 찔렀으며,
어느 날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루를 날려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나는 나다.
그 모든 불완전함을 통째로 안아주는 일,
그것이 진짜 의미에서의 ‘자기 껴안기’다.
언젠가 한 상담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어린 시절의 자아를 품고 산다.
그 아이를 혼내지 말고, 이해하려 해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내 안의 아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책임지지 못한 선택,
감정을 억누른 말투,
남들에게 맞추려다 망가진 자존감.
그 모든 흔적들이 내 안의 작은 존재를 위축시키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아이의 등을 조용히 두드리는 것이다.
말없이, 따뜻하게.
“괜찮아, 너는 잘해왔어.
지금 이만큼 온 것도 기특해.”
나를 껴안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고,
눈물 한 번 흘렸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안아주는 법은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오늘 하루를 견딘 나를 칭찬하는 것,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은 나를 토닥이는 것,
그게 바로 껴안기의 시작이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누구의 인정도,
누군가의 칭찬도
결국 나를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살게 하는 힘은,
나 자신으로부터 온다.
나를 껴안는 법을 배우고 있는 지금,
나는 조금씩 나를 신뢰하는 법을,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용기를 배워가고 있다.
비로소,
내가 나의 첫 번째 친구가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