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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ug 31. 2023

아이들 몰래 듣는 핑크퐁 노래가 있다.

아이가 아파 월요일 병가를 내고 아이와 함께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데에 목적이 있는 날이지만, 하루의 시간이 일단은 생겼으니 집안일 좀 더 하자 하여 그 참에 빨래를 개어 자리에 넣고, 새로운 빨래도 돌리고, 집안 곳곳 먼지도 닦고, 일주일 우리 가족의 간식으로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이 들으라고 핑크퐁 노래 시리즈를 스피커에 연결해 틀어주었다. 아이는 아픈 것도 잊었는지 빨래 너는 행어를 붙들고 춤을 춰댄다. 쟤가 정말 아픈 건가 싶어 체온을 재면 39-40도. 징징대지 않아 주어 고맙기는 하다만, 충분히 쉬어야 나을 텐데 생각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쿠키는 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도우 만들고 오븐에서 굽는 시간 다 합치면 20분 정도. 갓 나온 쿠키를 한 김 식히고 아이와 함께 먹을 동안에도, 핑크퐁 리스트에 있던 노래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 들은 익숙한 멜로디가 나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단순한 멜로디에 핑크퐁이 반주 코드를 아주 정성스럽게 입혔다는 것. 그리고 그 반주 덕분에, 알고 있던 멜로디가, 그리고 핑크퐁이 개사한 가사가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와닿아 쿠키를 먹다 말고 울컥하는 주접을 나도 모르게 떨었다.


봄이 왔단다.
봄이 왔단다.



나에게 봄이 왔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들렸다. 정말 봄의 초입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유치한 엄마는 가끔 혼자 있을 때, 아이들 몰래 핑크퐁의 겨울잠을 듣는다.(아이들과 함께 들으면 이거 듣고 싶다, 저거 듣고 싶다 요구사항이 빗발치기 시작하므로.)





꼭 무언가가 되어야만, 무엇이든 이루어야만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유년시절부터 학습된 조건적 사랑 덕분에, 무언가를 성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관념은, 뭐라도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는 채찍이 되곤 했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아니지. 이제야 겨우 내가 되었다. 태어난 자체 만으로도 세상의 기쁨이었던 아이를 낳고 나니 알겠는 이 마음으로는, 내가 겪은 유년시절을 이해할 수가 없어 괴로운 밤들을 보내며, 이제야 겨우 내가 되어 간다.


아이에게 하는 말들을, 어린 시절 내가 듣고 싶었던 말로 대신하는 때가 있다. 아무도 해주지 않던 말들을, 자주 불안했던 내면 아이가 남몰래 귀 기울여 듣고는 안도할 때가 있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하여 안아줄 때면, 오히려 더 꼬옥 안아주는 아이가 나의 모난 구석을 위로할 때도 있다.


너는 육아를
아이를 위해서 하는 거니,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니.


아이를 키우며, 미처 자라지 못한 나를 키우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덜 자란 내면 아이를 내 아이 옆에서 함께 키우며, 육아 원칙 1순위는 언제나 내 아이는 내가 겪은 시간과 무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우려 할수록 선명히 새겨지는 기억 덕분에,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참 길고도 길었던 그 시간이, 결론적으로는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만 쓰겠다고 캐릭터를 잡았는데, 쓸수록 자꾸 마음 깊은 곳 이야기가 김밥 옆구리 터지듯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모른 척 덮어둔 상처들이 자꾸만 나 언제까지 방치할 거냐고 외치는 것만 같은 요즘, 마음이 부쩍 더 복잡하다.


나는 정말 봄의 초입에 서 있나 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만 지나면, 나에겐 정말 봄이 오겠지. 애써 덮어둔 평온이 아닌, 진정한 평온을, 나는 아주아주 처음으로 느껴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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