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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06. 2023

멈춰버린 오전 6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시간

하루종일 서서 근무를 해 피곤하지만 다음 날 쉰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퇴근을 했다. 퇴근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척 맑고 청명하게 느껴졌다. 해가 짧아지면서 제법 시원해진 9월 중순.. 곧 다가올 가을 생각에 그리고 내일 쉴 생각에 발걸음은 더 가벼웠다. 신나는 기분으로 사뿐사뿐 날아가듯 집에 도착했다. 소리가 먼저 퇴근해 집에 와 있었고 우재는 오늘도 집에 없었다. 요즘 늘 저녁 운동을 간다며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는 터라 퇴근하고 우재를 잘 만날 수가 없다. 그래도 요 며칠간은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와 골목길을 같이 걸어주곤 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긴 그냥 엄마 출근길 같이 걸어보고 싶어서 그러지..”
“그래? 고맙네 히히 아들이 같이 걸어주니 좋네~ “
“요기까지만 걸을 건데? ㅋㅋ 잘 다녀와~”
“잉?~ ㅋㅋ 알겠어~ 그래도 고마워~ 점심 잘 챙겨 먹고~ 다녀올게~.”

지난주 며칠간 아침 출근길 배웅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일은 쉬는 날이니 우재와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말했다.
“요즘 우재 여전히 운동을 거기로 가는 거야?”
“그렇지, 일요일도 약속 있다며 나갔다가 어디냐고 전화하니 거기에 있다고 하더라고.”
“아.. 그런데 자꾸 거기에 가는 게 영 마음에 걸려.”
“나도 그렇긴 한데.. 자기도 모르게 그리로 발길이 간다는 거 같던데… 마음이 시끄러우니까 그렇게 바람이라도 좀 쐬고 오면 괜찮겠지.. 뭐.”
“아니야.. 사실 어제 밤늦게 엄마가 전화해서 들어오라고 전화했잖아.. 그때 나 정말 정신없이 바빴단 말이야.. 바쁘게 일하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우재가 안 들어와 있어서 전화했더니 첨엔 안 받다가 카톡 하고 다시 새벽 1시 넘어 겨우 통화가 됐고 당장 들어오라고 이야기했더니 새벽 3시 반에 들어왔어.. 아.. 이 녀석 아무래도 맘에 걸려…”
소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방을 살펴보니 왠지 모를 분주함과 서둘러 정리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급히 한 설거지와 누나 먹으라고 해놓은 듯한 1인분의 밥이 완성된 지 30여분밖에는 지나지 않았더랬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계속 들었고, 무슨 일로 이리도 서둘러 나갔는지 궁금했지만 늘 운동을 다녀오는 걸 아는 터라 그 묘한 느낌은 곧 나의 바쁜 일상에 묻혀 지나갔다.

매일 하던 대로 책 읽고 서평올리고 또 읽어야 하는 책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니 밤 11시 반이 넘어 12시가 다 되었다. 그 시간까지 역시나 우재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 녀석 또 늦네.. 내일은 깊은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겠다.. 정말..’ 이런 마음을 먹으며 잠 잘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재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왜 안 들어와??”
“왜.... 어디긴 어디야.. 늘 가는 곳이지 뭐..”
“아니 맨날 거기서 뭐 하는데 늦어…?”
“뭘 하긴 뭘 해 그냥 있어... 알겠어 들어가... 들어간다고..”
“알겠어....….. “

단 한 번도 나에게 퉁명스럽게 이야기한 적이 없던 아들이 어디냐고, 뭐 하느냐고 묻는 내 말에 너무나 퉁명스러운 대답을 하니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 어서 들어오라는 말도 않고 알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시간이 밤 12시 30분쯤... 30여분을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에 선뜻 잠들지 못하다 하루 일과에 지쳤는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3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번쩍 눈이 떠졌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들지?...' 하며 우재방을 바라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우재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릭 띠리릭 띠리릭…………’ 전화기 너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뭐지?? 이 시간에 뭐지???’ 머릿속엔 물음표가 천 개쯤 떠도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연거푸 2번을 전화했지만 수신자는 없었다. 3번째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를 걸면서 소리방으로 들어가 소리를 불렀다.

“소리야… 소리야… 우재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어.”
“어?? 어?? 우재가??”
너무 놀라 잠에서 깬 소리가 나를 바라봤다.
“음.. 우재가 아직 안 들어왔는데… 전화를 안 받아….”
“어 엄마 내가 전화해 볼게..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봐..”
“어 그래 어서 전화 좀 해봐..”
“아.. 뭐지.. 왜 안 받지..”

소리와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놀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조금씩 조금씩 두려움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니야 엄마.. 조금만 기다려 보자.. 전화계속 해보면 곧 받을 거야..”
“그렇겠지? 아니야 그런데 소리야.. 우재가 엄마 전화를 받지 않은 일은 거의 없었어.... “
“왜 그래 엄마.. 아니야 잠깐 전화를 못 봤을 수도 있어.. 다시 해보자..”
“우재는 친구들하고 수다 떨다가도 술을 먹다가도 되도록이면 받았고 혹시 못 받으면 바로 꼭 전화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답을 해줬었어……… “

내 정신은 아득해져만 갔고 그런 나를 소리는 달래주었고 그래도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새벽 5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잠시 더 기다려보자며 혼자 생각에 잠긴 소리는 조금 후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아무래도 신고를 해야겠어..”
“어?? 무슨 신고??”
“어.. 실종신고.....”

실종 신고시간은 오전 6시. 다시는 우재와 함께 맞이할 수 없는 9월 15일 오전 6시였다.
해가 떠오르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오전 6시이지만 그날 아침 나와 소리와 우재에겐 멈춰버린 시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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