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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06. 2023

출근길


내 손엔 양말이 들려져 있다. 이리로 오라는 나의 손짓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내 손에 있는 양말도 이러다 허공으로 손짓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도저히 꿈쩍도 하지 않는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 양말을 치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질 수 없다. 지금 뒤로 물러나면 모든 시간표는 꼬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잠깐의 대치를 어서 끝내야만 한다.
질 수 없음을 가득 담은 눈빛이지만 표정은 조금 부드럽게 아이를 달랜다.
그런 내 눈빛에 기가 죽고 자신의 뜻이 관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싫다는 몸짓은 조금씩 수 그러 들고 대신 눈에 눈물이 차르르 차오른다. 그러면서 결국 나에게로 발을 내놓는다. 양말을 한쪽씩 신기고 나면 1단계 겨우 통과.

나도 겉옷을 걸치고 아이와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선다.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어린이집 버스를 타러 나가면서 내 체력의 반을 넘게 써버렸다.  
아침마다 출근전쟁을 치른 지 2주쯤이 다 되어가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 다행스럽게도 너무나 좋아하는 숫자가 엘리베이터 층수표시창에 나타난다.

“저건 몇이야?”
“응 2야.”
“저건?”
“응 3이야”
“그다음은”
“4, 5, 6, 7, 8, 9,10.. 우와 왔다~ 타자.. 어서~ “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질문은 계속된다.
“저건 9야?”
“응 맞아~ “
“그리고?”
“ 8,7,6,5,.”
“4, 삼, 이, 일~~”
“우와~ 맞았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내 말에 그냥 씩 웃는다. 당연하다는 듯한 미소다.

멀리서 어린이집 버스가 보인다.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버스가 다가올수록 내 뒤로 물러서서 버스에 타고 싶지 않은 마음을 한껏 드러내며 힐끗 나를 쳐다본다.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쩌면 내가 아이보다 더 할지도 모른다. 그냥 아이와 집에서 집안걱정 따위 없이 책을 읽어주고 간식도 만들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림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정말 상황만 허락한다면 말이다.

버스가 다가오고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번쩍 들어 안고 도착한 버스 앞으로 걸어간다. 아이는 내 품으로 파고든다. 버스에서 원장님이 내려 아이를 부른다.

“우재야~ 어린이집 가야지~~ 엄마 직장 잘 다녀오시라고 하자~ 어서~~~”
원장님이 이야기하니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원장님을 바라본다.
“우재~ 어제 어린이집 가서 태권도두 잘했고 울지도 않고 친구들하고 잘 놀았지??”
원장님 말에 눈물이 조금씩 마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원장님이 안아주려 두 팔 벌리니 슬쩍 원장님에게로 몸을 기울인다.
“어이쿠~ 그렇지 우재야 엄마 잘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
원장님의 밝은 음성이 우재를 밝은 에너지로 감싸안는 느낌이 든다.
원장님이 이끄는 대로 내 품에서 벗어난 아이는 어제보다는 조금 더 힘이 들어간 발걸음으로 어린이집 버스에 올라탄다. 나 아이의 표정에서는 여전히 아쉬움과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진다.
 
‘그래 이 정도면 정말 다행이지.. 한 달 정도 지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거야.’

너무나 기특하고 고마운 시간. 5살 어린 녀석이 용기 내어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간다니 가슴 벅차오른다. 12월생에 체구도 작고 낯가림이 심해 더욱더 맘이 쓰이는 아이다.
나의 울렁거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어린이집 버스는 꿀렁~ 방지턱을 넘어 달려간다.

이렇게 2단계를 그나마 어제보다 수월하게 통과하고 나서야 나의 출근길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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