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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06. 2023

모르는 것이 인생

10킬로 완주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묶고 출발선에 선다. 멀리 보이는 피니시 라인을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큰 숨을 ‘흐음’ 들이마시고 ‘후우~’ 하고 내뱉으며 상체를 숙이고 선생님의 알림 총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나는 내발 끝을 보며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국민학교시절엔 뭐든 잘하고 싶었다. 그들의 관심이 내게 와닿을 수 있게 하려면 나는 애써야 했다. 애쓴 만큼 다가오는 손길과 눈길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그 안에 달리기도, 그림도 있었다. 지금은 무척 작은 편에 속하는 체구이지만 국민학교시절엔 그리 작지 않았기에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달리고 또 달리며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을 해냈고, 그럴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나에게로 이끌 수 있었기에 욕심냈던 시간들이었다. 집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던 칭찬이었다. 언제나 부족하다는 핀잔과 야단 속에 자란 ‘어린 선민’이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한 채로 나이 들어갔다.

그랬던 그 어린 시절을 가슴 안에 묻어둔 채 35년이 훌쩍 넘어 나에게 다시 ‘달리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21년 10월 코로나 중 ‘세이브 더칠드런마라톤 4.2195킬로’ 실제 마라톤의 10분의 1의 거리만 달린 후 온라인 인증을 하면 후원을 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과연 내가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부담 속에 힘들지만 겨우 달려냈고 그것을 시작으로 마음속에 조금씩 예전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로 한번 더  온라인인증 마라톤 3.1킬로에 도전했고 이러한  작은 성공이 쌓여가며 자존감을 높여주게 되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나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다행스럽게도 깨우친 중년의 ‘선민’이었다. 매일매일의 내가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깨우치며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3년 3월 1일 태어나 처음으로 ‘마라톤’이라는 행사에 10킬로 달리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 달 전부터 연습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쉽지 않았고 17일 전에서야 겨우 달리기 연습 시작. 퇴근 후 3~4킬로, 30분 정도의 시간을 통해 연습했고, 힘들지만 무언가 이루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한계에 도전하는 나 자신을 응원했다.

달리기가 있던 날 새벽,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간에 늦으면 어떡하나? 과연 잘 달릴 수는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리게 될까? 10킬로 완주를 해낼 수 있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그만큼 설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이른 준비를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달리기 장소에 도착해 보니 현장에서의 긴장감과 설렘은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혼자 온 사람도 제법 보였고, 가족과 함께 준비를 하고 번호표를 붙여주거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달리기로 한 분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달리기를 하지 않는 분에게 연락이 왔고 그분은 그저 응원만을 위해 현장을 방문해 주었다. 너무나 감사했고, 큰 힘이 되어주었다.

곧 준비운동이 시작되었다.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달리기를 바라는 모든 오픈 행사가 끝나고 풀코스, 하프코스 선수들이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바로 10킬로 선수들이 대기하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는 분과 두 손을 꼭 잡고 파이팅! 우왓! 떨려!!!  ‘출발’ 신호를 주시는 분이 출발 전 모두 함께 숫자를 외치라고 안내한다. 사람들은 함께  5, 4, 3, 2, 1을 외쳤고 나는 큰 숨을 ‘흐음’ 들이마시고 ‘후우~’ 내뱉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나 자신을 믿고 한 발씩 내디뎠다. 함께 달리며 서로 응원해 주니 큰 힘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와! 정말 달리고 있구나 내가!!’
그런 마음으로 어찌 달렸을까 싶은 10킬로 막바지. 드디어 피니시 라인이 보였다. 이제 곧 끝이었다. 피니시라인을 바라보며 달려 들어가는 순간 내 발은 아무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만은 더욱더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힘이 솓아올라 전력으로 달려 들어갔다. 만세!!! 10킬로 완주 성공~~~!!!


참으로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우리의 미래. 23년 3월 1일 아침 올림픽 공원 주변 도로. 여기서 내가 10킬로를 목표로 수많은 인파들 속을 달리고 있을 거라고 누가 예측이나 했었을까. 그러니 나의 앞으로의 삶에서도 혹여 예측하지 못한 모습이더라도, 한계에 도전하고 멋지게 성공해내고 있더라도 놀라지 말자며 환하게 웃음 짓는다. 이제는 늘 도전하며 점점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있는 내가 무척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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